칼바람
317기의 비애 - 1 본문
1989년 7월 14일, 한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이날 400여명의 예비 전우들이 입대를 했다.
당시 본인은 입대 3일전 친구들과 입대주를 거하게 하고 한바탕 사고를 치는 바람에 윗 입술에 7바늘을 꿰매고 거즈를 붙인채 입대를 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상처가 다 아물면 그때 입대를 하라고 입대를 연기할 것을 주문했지만 억지로 우겨서 훈련소로 갔다.
친구 한놈과 같이 지원해서 함께 진해행 버스를 타고 마중온 또다른 친구놈과 진해에서 돌솥비빔밥 한그릇씩 하고 새 운동화 하나씩 사 신고 얼굴에 거즈를 붙인채 늠름한 모습으로 훈련소에 들어서자 말자 한 교관(맞나?)이 나를 향해 “어이”하고 불렀다. 나는 올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일어서서 앞으로 나갔고, “얼굴 왜이래, 한번 떼봐”하는 것이었다. 당시 진물이 나서 확 잡아떼면 피가 날것이 뻔했지만 살살 뗄수가 없어 확 잡아 뗐더니 눈물리 핑 돌았다. 그 교관은 “이거 안되겠는데...”라고 중얼거렸고, 나는 “괜찮습니다. 다 낳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로 향했다.
이후 똑같은 상황이 3차례나 반복됐고, 그때마다 눈물이 핑도는 것을 감수하고 확 잡아뗐다 붙였다는 반복했고, 어쨌던 훈련소에 입소했다.
3일간 사복을 입고 구르고 뛰는 동안 거즈는 자연스럽게 떨어졌고, 3일째 되는날 집에 갈 사람 나오라는 말에 열댓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갔고, 깁스한 2사람은 따로 옆으로 나와 있었다. 한 교관이 나를 지칭하며 “얼굴에 반창고 붙인놈은 왜 앞으로 안나와”라고 소리쳤고, 저는 “이제 진짜 다 낳았습니다.”라고 맞받아 쳤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일단 깁스한 2사람 옆에 서 있었다.
집에 가겠다든 10여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핑계를 댔지만 그중에는 한사람도 집에 가지못했고, 깁스한 두 사람과 나만 남았는데 나에게 온 교관은 내 얼굴을 보더니 혼자서 판단을 못하겠던지 다른 교관을 불러 의논하고 나서 “정말 괜찮겠나”라고 하기에 큰 소리로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며 자리로 갔고 드디어 35개월의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