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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 쌍용차 ‘줄방문’, “진정성 없진 않다”

카알바람 2012. 11. 7. 11:58

대선 후보들 쌍용차 ‘줄방문’, “진정성 없진 않다”

[인터뷰] 단식 28일째 접어든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이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 28일째. 그새 싸늘한 늦가을이 찾아왔고, 대한문 농성장에도 차가운 바람이 감돈다. 6일 오전 10시 경, 차가운 빗방울이 맺혀있는 농성장 천막 사이로 김정우 지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식 28일째의 야윈 몸에 흰 상복이 펄럭인다.

  단식 28일째인 김정우 지부장을 만났다. [출처: 김용욱 기자]

호흡이 짧아져 긴 시간 말을 이어갈 수 없는 그는, 인터뷰 첫 마디에 ‘5분 안에 끝내달라’고 말했다. 안부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다 빼 놓고, ‘핵심’만 이야기하자는 요구다. 그래도 너무 야윈 얼굴에 깜짝 놀라 ‘건강은 어떠시냐’고 묻자, “괜찮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행히 아직까지 몸에 큰 이상이 온 적은 없다고 한다.

문재인, 안철수 등 대선 후보 ‘쌍용차 농성장’ 줄방문
김정우 지부장 “정치적 홍보와 측은지심 때문...진정성 없어 보이지는 않아”


평택 쌍용차 공장 앞 ‘희망텐트’에서부터, 대한문 ‘분향소’에 이르기까지. 김정우 지부장을 포함한 해고자들은 오랜 노숙농성을 이어 왔다. 그 결과 쌍용자동차 사태는 ‘정리해고 문제’의 상징이 됐고, 대한문 앞은 ‘정리해고 투쟁’의 거점이 됐다.

대선을 앞둔 대선후보들도 이 상징적인 장소에 찾아든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10월 24일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지난 3일에 각각 대한문 농성장을 방문해, 김정우 지부장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 이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여야가 합의해 국정조사를 시행해야 한다”며 “출마선언 때부터 쌍용차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 역시 쌍용차 국정조사를 성사시키겠다고 강조하며 “국정조사 만큼은 여야 협의로 정기국회 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야권 후보들이 줄줄이 농성장을 방문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문제해결의 단초가 되는 ‘국정조사’의 현실화는 아직도 더디다. 김정우 지부장은 대선 후보들의 방문과 관심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며 “하나는 정치적 홍보와 또 하나는 측은지심의 발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10여 년이 넘도록 한국사회를 곪게 했지만, 어느 정권도 브레이크를 잡지 못했다. 때문에 ‘투쟁하는 노동자’는 당연히 대선 즈음에 반짝 하는 약속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김 지부장 역시 이들의 행보와 이야기를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안철수, 문재인 후보의 문제 해결 의지와 관련해서는 “진정성이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 후보는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약속한 반면, 안 후보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쌍용차 문제 해결만 언급했다”고 소회했다.

현재 김정우 지부장은 국정조사 관철 시까지 단식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국정조사는 쌍용차 문제해결의 ‘단초’일 뿐, ‘정리해고 철폐’가 궁극적인 목표인 이들의 싸움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쌍용차 분향소를 방문한 대선 주자들 역시 ‘정리해고 철폐’와 관련한 정책적 공약은 전무하다.

김 지부장은 안철수, 문재인 후보 측의 노동 정책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는 완전한 정리해고 철폐를 말하지 않았고, 안철수 후보의 경우 노동 중심적 관점이 부족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단식 28일, 안팎에서 건강상 우려
“우리 스스로 앞장서서 사태 해결할 수밖에 없어”


오랜 단식으로 지부장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었지만, 인터뷰 내내 두 눈만은 무섭게 번득였다. 청문회와 국정감사 기간, 정부와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전향적인 대책 하나 도출되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김 지부장은 누구보다 분노했고 답답했다. 때문에 그는 한결같이 “쓰러지더라도 국정조사가 실시될 때까지 단식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지부장은 “파완 고엔카 회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했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했지만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며 “이제 국정조사로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책임자 처벌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정리해고 철폐 투쟁’의 상징이 된 그는, 최근 노동자 대선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변혁모임’은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과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 등을 후보로 추천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고사하고 김소연 후보를 추천했다.

지부장은 대선 후보를 고사한 이유에 대해 “현안 투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노동자 대선 후보로 출마하게 된 김소연 후보에 대해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지 질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노코멘트”였다. 쌍용차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미 대선 후보로 출마한 김 후보에 대한 언급이 자칫 쌍용차 사태 해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대신 김 지부장은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연대 단위와 노동자들에게 “결국 우리 스스로가 앞에서 사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 주면 고마울 것 같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오후 2시에 박근혜 후보 등 대선 주자들이 시청광장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근혜 후보의 이름 석 자를 들은 김정우 지부장의 눈빛에 분노가 서린다. 그는 “가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국정조사를 막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게 항의하겠다”며 고함을 친다. 그는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스물 세 명의 먼저 간 동지들의 몫을 대신해 ‘끝장 투쟁’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