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노동의 새벽 본문
- 안윤길 시인 (펌)
뿌옇게 밀려오는
새벽이 시리도록 맑소
어둠이 밀려갈수록
공장 안팎 건물들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고
담장 가까이 건물 여기저기
얼굴 가린 선봉대들 눈빛이 매섭게 번뜩이오
밤새 저러고 있었나보오
이윽고 모든 사물이 빠르게 들어나며
담벼락 너머로 웅크린 개때같은 전경들...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오고 그럴수록
가슴속에서 울컥 뜨거운 분노 용솟음치고
밝은 햇살 맞으며 전열 가다듬는
우리들의 파업 전선은 한치도 흔들림없소
그제 본 텔레비젼 화면이 떠오르오
그리도 배짱 내밀던 놈들이
우리가 기계를 멈추자마자
허겁지겁 협상자리에 쫓아 나온걸 보니
파업이 과연 무섭긴 무서운가 보오
저놈들은 웃는 얼굴로 말했지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나라 경제가 엉망이 되고 어쩌고 저쩌고
근로자들이 자제해야 된다는 둥
점잖은 얼굴에 애국자인척하는
저놈들 낯짝을 보는 그 순간
확연히 머리속이 맑아져왔소
그랬소
뭇사람들이 온각 맵시로 뽐매던 옷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
그것이 돈에 힘인 줄만 알았던 그것이
아아 바로
우리들 노동의 힘이었음을
옷의 원천인 원사를 뽑던 이 손이
위대한 노동의 힘을 뿜어내는 손이었음을
야누스같은 저 더러운 웃음이
확연히 깨닫게 해주었소
문득,
재롱떨던 딸내미 얼굴이 떠오르고
걱정스런 마누라 얼굴이 겹쳐지오
여보 너무 걱정마오
용역깡패들이 덥치던 그날
뜨거운 눈물 삼키며 파업에 동참했던 바로 그날이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겠소
어쩌면, 저놈들의 진압의 포로가 되어
개처럼 끌려가 법정에 설지도 모르겠소
그래도 후회하지 않겠소
당신 앞에 다시 서는 날
떳떳이 말하겠소
당신 남편은 노예의 굴레를 벗어던진
당당한 노동자였노라고
자랑스런 효성의 노동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