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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자화상

카알바람 2012. 10. 30. 16:28

우리들의 자화상

정문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오늘도 외치고 있다.

"출근하는 조합원 동지여러분, 
민주노조 사수하고 고용안정..."

아무리 떠들어봐야 공허한 메아리다
출근하는 조합원들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감시카메라와
용역경비, 그리고 관리자들의
눈초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움은 가슴에 묻은 채
오늘도 고개를 돌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살벌한 쇠창살의 정문을 지나
삶의 터전이라고 믿고있는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애써 자신은 짤리지 않고
출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더럽고 배알이 꼴리더라도
목숨 부지하는 것이 어디냐며
오늘도 육신을 저당 잡힌 채
빈 껍데기가 하루를 채우고 있다

술자리에서는 누구나 투사다
회사를 씹어 돌리고 관리자들을 패대기치기도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 말살하려는 인간들을 때려 잡아야하고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게거품 물 듯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러나 그런 용기와 투쟁의지는 술이 깨면서
거짓말처럼 현실로 돌아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빈 껍데기가 되어 
현장에서 기계와 씨름한다.

현장에서 고참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왕년에 열성적으로 활동했었다고 큰소리친다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먹는다고
고참이란 작자들은
자신들의 그런 활동 경험을 팔고서
회사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노동조합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박살낼 수 있는지
자신의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팔아 넘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전직 노동조합 장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전직 노동조합 장들에 대한 예우가 
이보다 더 좋은 회사가 있을까
그 속에서 죽어나는 노동조합과
죽어나갈 조합원들이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