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노동자로 살아 간다는 것 본문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적어도 내가 효성이라는
회사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이란 걸 받고
그 월급에 맞추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노동자의 삶 인줄 알았다
열심히 일만 하고
주어진 환경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
노동자의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효성에 발을 딛고 나서부터
노동자들의 진정한 삶을 알게되었다
하루하루가 마냥 흘러가는 게 아니고
자신의 몸뚱이를 저당잡히고
정신마저 압류당한채
오직 생산의 도구로써 활용당해야 했고
그렇게 육신을 내맡긴 뒤에야 맞볼수 있는
밤잠 못자고 쉴때 못쉬며 일해야 만질수있는 월급
그 알량한,
자신의 육신을 저당잡힌
월급이라도 받기위해서는
관리자들의 출세에 도우미가 되어야하고
그러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노동조합을 외면하고
투쟁을 외면해야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효성에 입사 한 후
노예 근성이 내 몸에 달라붙을 무렵
노동 운동하는 선배를 만났고
그 뒤 세상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것은
이전에 내가 겪어보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휘몰아쳤다.
그 동안 걸어왔던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나를 위한 것들이 아니라
틀에 박힌 세상에
나를 맞춰가기 급급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나에게 맞는 세상을
나의 힘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미친 듯이 쫓아 다녔다
크고 작은 집회는 물론이고
각종 강연과 노동강좌를 쉼 없이 들었고
수많은 투쟁현장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점점
노동자로써 해야할 일이 넘치는 세상에
나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이
한없이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노동자로 불리기보다
해고자라는 이름이 더 친숙해져버린
또다시 세상은
다시 한번 나를 들뜨게 한다
결코 해고자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나 자신을 위해, 나 혼자 살아보겠다고
바둥거리다 해고가 된것이 아니라
효상자본이 열심히 잘 싸운다고,
항상 선봉에서 투쟁한다고
특별히 내려준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고자 생활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살아있고
해고자들 스스로가 투쟁의지를 꺽지않는 한
효성자본은 해고자를 양산한 것은
크나큰 실수를 한 것이다.
효성이라는 회사에서
해고되고 나서는
또 다른 노동자의 삶이 보인다
현장에서 일할 때와는 또 다른
그 무언가가 나를 이끌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하면서
해고된 노동자로
당당하게 이 땅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