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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비례 지방의원직도 박탈…헌재 이어 선관위도 ‘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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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비례 지방의원직도 박탈…헌재 이어 선관위도 ‘월권’

카알바람 2014. 12. 23. 10:09

진보당 비례 지방의원직도 박탈…헌재 이어 선관위도 ‘월권’

“헌재 논리라면 ‘지구에서 추방’도 가능?”…“선관위, 정당해산 무관한 규정으로 엉뚱한 결론”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과 함께 당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데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면서 이들 기관의 '월권'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적 근거 없는 '국회의원직 상실' 결정…'지구에서 추방'도 가능?

헌법재판소는 지난 19일 진보당 해산과 동시에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까지 결정했다. 하지만 해산된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당해산의 실효성'을 이유로 당 소속 국회의원 5명 모두 의원직을 박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진보당 소속 전직 의원들은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권한 없는 자의 법률행위'로서 '당연 무효'라고 반발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상태이다. 이들은 서울행정법원에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당연히 월권"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규정도 없이 결정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정당해산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렇게 따지면 의원직 박탈뿐만 아니라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당원들의 선거권, 피선거권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결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제일 좋은 것은 '지구상에서 추방한다'(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헌재의 논리대로라면 법 규정에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조치도 가능하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또한 '의원직 상실' 여부는 위헌정당심판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부대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별도의 법 규정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의원직 박탈 규탄하는 전 통합진보당 의원단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당이 해산된 통합진보당 오병윤 전 원내대표와 김재연, 이상규. 김미희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박탈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헌재 이어 선관위도 비례 지방의원직 박탈
"정당해산과 무관한 규정으로 엉뚱한 결론 내려"

 

헌재에 이어 선관위도 22일 진보당 소속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 6명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해서도 '월권'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선관위가 근거로 든 규정은 공직선거법 192조 4항인데, 정작 이 규정에서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경우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등의 사유로는 의원직이 상실되지 않고, 자신이 임의로 탈당하거나 당적을 변경했을 경우에 직을 상실하게 된다. 즉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이 사라지거나 강제적으로 출당당하는 경우에는 의원직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 규정에서 '해산'을 '자진 해산'에 국한시키면서 '강제 해산'의 경우에는 의원직이 상실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는 법리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통합진보당 측 소송대리인단으로 활동한 이재화 변호사는 선관위가 근거로 든 규정 자체가 '정당해산심판'과 관계가 없는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이 변호사는 "이 규정은 정당해산과 무관한 규정"이라며 "엉뚱한 규정을 갖고 엉뚱한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후에 강제적으로 출당된 게 아니라 자기 의사로 탈당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철새 정치인'들의 당적 이탈이 문제가 돼 만들어진 규정인데, 이를 정당해산 사건에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중앙정치와 지방자치를 구분하는 원칙도 무시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변호사는 "독일에서도 사회주의제국당(나치당의 후신) 해산 판결에서 지방의회 의원직은 상실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지방의회 의원은 정치적 결정을 하는 영역이 아니라 행정 영역에 속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상희 교수도 "예를 들어 외국인의 참정권의 경우에 중앙정치에는 외국인 투표권이 없는데, 지방정치에는 있다"며 "이것은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성질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정부 측에서도 지방의원들은 정당해산에 따른 의원직 상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올해 1월 7일 헌재에 제출한 쟁점준비서면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소속 의원들에 대해서까지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이재화 변호사는 "선관위 결정은 정부의 기존 주장과도 어긋나고, 독일 사례라든지 우리 판례에도 맞지 않다"며 "선관위가 (정권에) 과잉충성해서 오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비례지방의원들, 의원직 박탈 중앙선관위 규탄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당이 해산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선관위의 의원직 박탈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