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두 번 죽인 박상옥 청문회
박종철 두 번 죽인 박상옥 청문회
‘박종철 수사검사’ 박상옥, “최선 다했다” 강변…정부·여당 ‘조직적 방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는 부끄러움도 없었다.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하면서 조작·은폐의 실체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또는 그러지 않았던) 검찰은 1차, 2차, 3차 수사까지 가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도리어 축소·은폐 관여 내지 방조 의혹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시 수사검사였던 박 후보자는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강변했다.
게다가 이번 청문회는 핵심 자료 제출을 거부한 정부와 여당의 방해 속에 ‘반쪽’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 고 박종철군 유족이나 시민사회, 야당이 기대했던 ‘진실규명’에는 턱밑에도 못 미친 셈이 됐다. 청문회에 앞서 제기됐던 “박종철 두 번 죽이기”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옥 “최선 다했다” 강변…박종철 친형 “정의롭지 못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사실상 ‘박종철 청문회’였다. 청문회에서는 박 후보자, 더 나아가 검찰의 사건 축소·은폐 관여 여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참여연대 박근용 사무처장의 표현처럼 “열리지 말았어야 할” 청문회가 열리게 된 셈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최되는 만큼 검찰에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통해 박종철 사건의 의미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청문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 박종철군의 친형인 박종부씨도 이날 청문회에 앞서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 사건은 동일한 사건으로서 검찰이 세 차례에 걸쳐 수사를 했다. 그러나 검찰의 잘못은 단 한 번도 수사 대상이 된 적이 없다”며 “검찰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이제라도 검찰이 축소·은폐 조작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전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며 “그럴 때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기록될 것이고 그 역사적 의미도 보다 분명해지며,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교훈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청문회에 출석한 박 후보자는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는 진상을 다 밝히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면서도 “하루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며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의 노력’으로 사건의 진상이 모두 규명됐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검사는 물론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진상을 다 꿰뚫어볼 수 없고, 그 결과가 잘못됐으면 법률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심정적으로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그렇지만 저희가 정말 진상을 알면서 일을 안 하거나 검사의 본분을 저버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정권 차원의 외압으로 인해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진실’ 자체도 검찰이 아닌 이부영 전 의원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의해 폭로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또한 후에 추가 폭로되는 공범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까지 하고도 고문 가담 사실을 밝히지 않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검찰 수사의 정황들도 여럿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들에 비춰본다면 정권의 축소·은폐로 문제가 된 역사적 사건에 참여한 수사검사로서 최소한의 부끄러움마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고문가담 경관 중 한 명인 황모씨가 “잘못된 것도 알고 죄스러운 것도 안다”며 “(유가족에게) 몰래 가서 용서를 많이 빌었다”고 고개를 숙인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했다.
이러한 박 후보자에 대해 박종부씨는 “그 엄혹한 시기에도 목숨을 내걸고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교도관과 이부영 전 의원도 있는데 참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박 후보자는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으로부터 외압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사건이 폭로되는) 1987년 5월 말까지 검찰수사팀에 참여하면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부영 전 의원은 당시 경찰청 대공수사단장과 간부들이 고문 가담 혐의로 구속된 조한경·강진규 두 경관에게 찾아와 1억 원씩이 든 통장을 건네며 공범 은폐를 종용했던 사실을 언급한 뒤 “경찰의 은폐 정황이 당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검찰 수사팀에 전달되지 않을 수 없다”며 “박 후보자도 이를 알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의원은 두 경관과 같은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경찰의 공범 은폐 시도를 외부로 알린 인물이다.

정부의 청문회 방해, 여당의 적극적 비호
이날 청문회는 법무부와 검찰, 여당의 사실상 ‘조직적 방해’ 속에 이뤄졌다. 당초 두 달 넘게 청문회를 ‘보이콧’ 했던 야당이 ‘청문회 개최’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내걸었던 전제 조건은 충분한 자료 제공에 의한 진상규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와 여당에 의해 철저히 무시됐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청문회에 앞서 핵심 자료인 박종철 사건 1, 2, 3차 수사와 공판 기록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법무부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해 오다가 청문회 하루 전날인 6일 기록을 보관 중인 서울중앙지검에서 ‘제한적 열람’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청문특위에 통보했다. 하지만 6천여 쪽에 이르는 자료를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열람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상식적이다. 정부가 자료 제출을 사실상 거부하며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야당 위원들은 “충실한 자료 분석을 통해 후보자의 은폐·부실 수사 의혹을 규명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라며 “청문 절차를 정부가 나서서 방해하는 것이자, 명백히 국회의 대법관 후보 검증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야당 위원들은 자료 열람 시간 확보를 위해 청문회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자고 새누리당에 제안했다. 그러나 여당은 이를 거부했다. 앞서 지난 4일 법무부가 ‘여야 합의 뒤 공동열람’을 조건으로 3천여쪽의 관련 수사자료를 가져왔을 때에는 여당 의원들이 지역구 일정을 이유로 열람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위원들은 청문회 과정에서도 ‘최선을 다한 수사’, 또는 ‘말단 검사’였다는 박 후보자의 주장을 두둔하며 그를 적극 비호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1차 수사 때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려던 것을 검찰이 끈질기게 수사해 진실을 밝히고 2명을 구속한 것이 맞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민병주 의원은 “당시 검찰 문화와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박 후보자가 상부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추가 수사를 지시할 지위였겠나”라고 박 후보자를 감쌌다.
여야가 채택한 증인들도 일부만 출석하면서 의미가 퇴색됐다. 특히 핵심 증인이었던 고문경관 5명 중에는 황모씨 1명만 나왔다. 당시 수사검사로서 또 다른 핵심 증인인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청문회에 출석해 박 후보자를 비호했다. 그는 “박 후보자는 은폐·축소 수사에 관련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수사검사들은 반드시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피나게 투쟁했다”고 주장했다. 안 시장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당 대표를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