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2010년 해군의장대 예비역 체육대회 본문
2010년에 두번째 해군의장대 예비역 체육대회를 다녀왔다.
천안 독립기념관 운동장에서 열린 체육대회를 겸해서 삼백회 모임을 전날 청주에 있는 가든에서 가졌다.
청주에 도착할때쯤부터 시작된 허리통증이 가든에 도착하자마자 몸살기운으로 인해 오한까지 들면서 술 한잔 제대로 못하고, 맛있는 고기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또, 작은아들놈도 감기몸살로 전날부터 열도나고 목도아프다고 해서 약을 먹고있었는데 이 놈도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와 나란히 누워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가관도 아니었단다.(집사람 왈)
비록 전기판넬이지만 뜨끈뜨끈하게 온몸을 지지고 이불 푹덮고서 초저녁부터 잠을 청한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은 몸이 개운한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맴버들은 밤새 술과 이야기로 꽃을 피우느라 잠을 설친 탓인지 아침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10시부터 진행되는 체육대회를 위해 7시에 출발해야만 했다.
가는길에 병천에 들러 소문난 순대국밥으로 속을 달래고 독립기념관 운동장에 도착했다.
10시전이었지만 이미 많은 예비역들과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개회식과 족구등으로 오전이 지나고 육계장으로 점심을 해결한후 오후부터는 100대, 200대, 300대가 의장대 생활을 체험해보는 시합아닌 시합을 진행했다.
제일먼저 분열 시범이었다.
총을 구하지못해 삽을 총대신 잡고 300대부터 역순으로 분열시범이 있었다.
50이 넘은 100대 선배님들의 분열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아 마땅할 만큼 완벽했다.
제대한지 30년이 넘은 선배님들의 모습에 과연 해군의장대가 과거에 어떠했는가를 짐작케했다.
다음은 사이드보이 시범이었다.
호송차에서 귀빈을 맞이하는 것이다.
호송나팔까지 준비해오신 선배님의 노고로 제대로 된 사이드보이 시범을 각 기수별로 진행했다.
이 역시 100대 선배님들이 300대 후배들보다 손발이 더 잘 맞았다.
다음은 호기수 시범이었다.
각 기수별로 조금은 차이가 있었지만 30년 넘는 세월동안 호기수 나름의 동작은 흡사했다.
마지막으로 총돌리기 시범이 있었다.
비록 총대신 삽으로 돌리기를 대신했지만 표정만은 진짜 총돌리는 모습을 능가했다.
모든 의장대 생활을 다시 한번 체험해보는 경기가 끝나고 홀수기수와 짝수기수로 나뉘어 축구 시합을 진행했고, 결과는 홀수기수의 완승이었다.
경기 중간중간에 아이들을 위한 게임, 부부가 함께하는 게임들을 진행하면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의 취지에 맞는 일정을 소화했다.
마지막으로 노래자랑시간이 이어졌다.
의장대 생활 9개월만에 몸이 아파 다른곳으로 전출갔다는 선배님이 직접 음향기기까지 준비해오신 덕분에 빵빵한 반주속에 노래를 할수 있었고, 노래자랑에 제일먼저 나오는 사람은 순위와 관계없이 선물을 준다는 소리에 집사람이 달려나갔고 선물까지 하나 챙겼다.
선물욕심에 나도 나가서 한곡 뽑았고 2등으로 집사람에 이어 또다시 선물 하나를 챙겼다.
아이들고 중간중간에 진행된 게임에서 상품권을 5장이나 챙겼단다.
11인승 승합차에 11명(울산에 있는 의장대 3명의 가족들)이 타고 오간 총 9시간의 차안에서의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또하나의 추억을 가슴에 아로새긴 날이었다.
<전역한지 30년이 넘으신 선배님들>
<전국에서 모인 해군의장대 예비역들>
<200대와 300대의 족구 한판>
<막간을 이용한 두 아들놈들의 축구시합>
<큰 아들은 맨발 드리블의 달인(?)>
<'제가 3등했어요, 저 주세요' 라고 손내미는 큰 아들놈(진짜 3등했음)>
<
<총 대신 돌린 삽자루. 예전에는 돌아가는 방향이 일치했는데 세월은 어쩔수 없나봅니다>
<현역때는 그렇게 싫던 '선착순'도 웃으면서 합니다>
<각종 경기마다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들(집사람도 있음)>
<상품권에 눈이 먼 두 아들놈이 가족게임에 다른 가족과 함께 섞여서 게임에 참가하고 있음>
<삽자루 돌리기 시합임에도 얼굴은 진지 모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