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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담뱃값을 2만 원으로 올리면 모두가 담배를 끊을까?

카알바람 2014. 9. 12. 11:40

담뱃값을 2만 원으로 올리면 모두가 담배를 끊을까?

우리가 몰랐던 담배 세금에 관한 6가지 상식 혹은 진실

 

이완배 기자 발행시간 2014-09-12 08:34:29 최종수정 2014-09-12 08:46:46

 

1.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율은 얼마나 떨어지나?

우선 정부의 발표를 인용해 보자. 11일 정부는 담뱃값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조세재정연구원이 설정한 가격탄력도 0.425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 말은 담뱃값이 1% 오르면 담배 소비가 0.425% 감소한다는 뜻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담뱃값이 500원 인상될 때 소비량은 8.5% 감소한다. 정부가 2000원 인상안을 내세우며 “담배 소비량이 34%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2. 담뱃값을 무작정 올리면 완전 금연 국가를 이룰 수 있나?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그래야 한다. 500원 올릴 때마다 소비량이 8.5%씩 떨어진다는 것이 정부 이론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따르면 담뱃값이 5000원 오르면 소비량은 85% 준다. 6000원만 올리면 사실상 소비량이 0에 수렴한다. 즉 담배 한 갑 가격을 8500원 선으로 책정하면 내 돈 내고 담배 사 피울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산수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담배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 중 흡연율이 20% 이하인 나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담배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이 20%라는 마지노선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평균 담배 가격이 1만 3000원이 넘는 뉴질랜드의 흡연율은 21%다. 평균 담뱃갑이 무려 1만 6364원으로 나오는 호주의 흡연율도 21%다. 세계에서 담배가 가장 비싼 노르웨이(1만 6477원)의 흡연율은 되레 높아져 28%에 이른다. 즉, 아무리 담배 가격을 높여도 흡연율을 20% 이하로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담배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가격이 아무리 높아져도 그에 비례해 흡연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약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약 중독자에게는 가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약 가격이 오른다고 약을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용한 가격탄력도 0.425를 맹신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얼마를 올릴 때 세수가 가장 많이 늘어나나?

담배라는 상품의 특성상 가격을 올릴수록 걷히는 세금은 누적적으로 많아진다고 봐야 한다. 담배 가격 인상분은 고스란히 세금이다. 가격 인상이 원가 상승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이 높아질수록 그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문제는 가격 인상으로 담배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논리대로 500원 인상할 때마다 소비량이 8.5% 준다면, 가격을 마냥 인상해서는 세수를 늘릴 수 없다. 담배 가격이 8500원이 되면 소비가 0에 가까워 세금이 거의 걷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이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함정이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흡연율 20%는 좀처럼 깨지지 않는 마지노선이다. 따라서 정부가 노르웨이 수준(1만 6000원)으로 담배 가격을 과감히 올려도 한국의 흡연율이 20% 이하로 내려갈 확률은 높지 않다. 이 경우 흡연율은 고작 60% 가량 줄어드는데(현재 49% → 약 20%) 한 갑 당 걷히는 세금은 열 배(현재 1500원 → 1만 5000원)로 늘어난다. 가격을 올릴수록 세금이 더 걷히는 구조다.

이처럼 담뱃값은 세수 증대를 노리는 정부에게는 꽃놀이패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담뱃값을 만지작거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2000원으로 정한 과학적 근거는 있나?

근거가 없다. 정부는 담배 가격을 2000원 올렸을 때 담배 소비량이 34.0% 감소할 것이고 세수는 약 2.8조원 증가한다고 밝혔다. 이 단순한 논리를 따른다면 담뱃값을 8500원으로 올리면 담배 소비량은 0%에 수렴하고 세금도 거의 걷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도 알고 있다.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피울 사람은 피운다. 세수 증대 효과만 놓고 따진다면 정부는 가격을 훨씬 더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부족한 세수를 간접세로 메운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정한 가격이 2000원이다. 이마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5. 걷힌 세금은 어디에 쓰나?

정부는 건강증진부담금 비중이 확대된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계획대로 시행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담뱃값 중 건강증진부담금 비율이 기존 14.2%에서 18.7%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시각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은 네 가지인데 그 중 담배소비세(총 세금 3318원 중 1007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여기에 교육세(443원)와 개별소비세(594원)가 붙는다. 그런데 이번 인상안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바로 신설된 개별소비세다. 이 세금이 지방세가 아니라 국세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사실이 하나 있다. 만약 정부 안대로 담배 가격이 올랐을 때 전체적인 지방세 세수는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가격 인상에 따른 지방세(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 인상률은 50.72%다. 반면 국세(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건강증진부담금 등) 인상률은 무려 217.85%다.

그런데 가격 인상으로 담배 소비량이 약 34% 줄어들면, 걷히는 지방세 총액은 오히려 조금 감소한다. 즉 가격 인상에 따라 늘어나는 세수 2조 8000억 원 대부분이 국세에 귀속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방 재정을 총괄하는 안전행정부 안에서도 “이번 담배 가격 인상이 지방 재정에는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6. 왜 담배에 ‘죄악세’를 물리나?

죄악세라는 것이 있다. 술이나 도박 등 사회적으로 죄악시 되는 물품에 붙이는 세금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이 대표적인 죄악세이다.

사실 범죄가 아닌데 죄악세를 물리는 것은 형용 모순이다. 술이나 도박, 담배가 죄라면 법으로 금해야 한다. 이미 법이 이들의 소비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도박은 합법 도박장의 경우)은 술이나 도박, 흡연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국가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죄악세’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조세 저항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죄악세라는 명칭은 흡연자나 음주자들에게 죄인 딱지를 붙여 죄책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너희는 죄를 저질렀으니 세금을 더 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죄악세에 해당 사항이 없는 비범죄자들(!)은 상대적으로 스스로의 선(善)함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낀다. 그리고 흡연자들이 내는 세금을 당연시하고 기꺼워한다. 이 때문에 집권자들은 조세저항을 줄이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종종 이 죄악세를 활용해왔다.

죄악세는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가 매춘부들에게 걷은 세금이 시초였다. 흥청망청한 생활에 돈이 쪼들린 교황은 엉뚱하게도 매춘을 활성화한 뒤 여기에 세금을 부과했다. 저 잘 살겠다고 ‘범죄’를 양성화하고 거기다가 세금을 매긴 것이다.

흡연이 범죄라면, 그래서 죄악세를 물릴 참이면 애초 담배를 팔지 말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흡연에 ‘죄악세’라는 명목의 세금을 부당하게 부과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