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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카알바람 2012. 10. 30. 16:11

눈만뜨면

자석에 이끌리듯 오가던 출근길

코 끝에 아려오는 화학공단 냄새

낯설다

빛바랜 투쟁조끼 벗어

천근만근 닛누르는 작업복 갈아입고

공장으로 들어서는 발걸음

어색해 낯설다

눈감고도 볼 수 있도, 만질수 있던

온 사위가 낯설어

나는 두렵다

 

 

 

내 몸처럼 부리던 기계

활칵 눈물이 속아 어쩔줄 모르는데

투쟁의 꽁무니를 물고 다니던 관리자 눈길

거만하게 내 몸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다

 

동료로 만나 동지로 엮어진 눈빛

부딪는 자리마다 아쉬움 떨어지고

윙 윙 기계소리에 묻혀

서글픈 노동을 시작하는 나는

나는 누구인간?

어제의

오늘도

내일도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나는 누구인가?

 

아직 사그라지지않은 분노

가슴터지게 외치던 민주노조 사수를

가슴 한켠에 접어두고

노예에서 투사로 태어났다고 수줍게 말하며

미친듯 울산을 헤맸던

나는

 

 

우리는 하나였어

담쟁이 벽을 타고 서로 받쳐가며

기어이

담장을 넘어갔듯

놓친 손 다시 잡고 등짝 내어 아낌없이 올려주며

13년 무쟁의 담을 넘었던 우리

우리 살아있었구나

서럽게 뺨을 타고 기쁨에 지쳐 흐르던 눈물

얼싸안은 니가 바로 나였구나

 

아! 얼마나 어리석은 세월이었나

10년 세월 누렇게 뜬 얼굴로

밤새 엮던 실타래가

어느 새 사슬이 되어 내 목을 조르고

우리의 삶을 난도질하고 있는건

이그러진 이 땅의 필련이란 걸

난 이제야 깨달은 거야

노동자 내이름이

자랑스런 주인의 이름이란 걸

피와 땀이 녹녹히 거리를 적시는

이제야

깨달은 거야

 

 

터질것같은 분노를 싸안은 채 공장을 넘어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을 집어던지며

이대로 무너질수 없는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진심을 담으며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무장해 갔어

 

 

 

억눌린 분노와 수모는

우리들의 것이 아니었어

 

 

작업복이 달라 너무 멀게 느껴지던 사람들

공장 울타리가 높아 다른 삶을 살것같은 사람들

모두를 저당잡힌 삶을 개기위해

몸부림쳤던

뜨거운 우리들의 투쟁

같은 상처로 쓰러지고

같은 구호로 일어서는

노동자 물결에서

난 해방을 본거야

 

 

아슴하게 잦아드는 투쟁 투쟁

파업 90일째

하루를 정리하고 머리띠를 풀면

이마 둘레엔 하얀 머리띠 새롭게 빛나고 있다

그 빛이 도두라질수록

손해배상, 가압류, 수배구속

현장 복귀 명령서

거세게 쏟아진다

눈에 만져질듯했던 승리

그 달콤하고 짜릿한 기쁨은

너무 짧게 지나가 버렸다

 

단단했던 마음에 금이 생기고

불안과 두려움에 지쳐

우리는 하나, 둘 섬이 되어 가고 있었다

때 절어가는 옷처럼 검게 타들어가는 얼굴처럼

한순간도 쉬지않고 우리는 투쟁에 댈려 들었다

 

끝까지 갈때까지 가자고 했지만

봄날 단꿈을 꾼 것처럼 아스라이

동지들은 그렇게...

민주노조 사수, 구조조정 반대

찟겨진 현수막만큼

투쟁의 근거지 을씨년스레 변해간다

 

그러나

그러나

가슴에 뜨겁게

화인으로 박혀

이마에 새겨진 하얀 머리띠를 뚫고

내 몸을 뜨거운 불덩이로 이끌었던

차마 부끄러워서 한번도 꺼내지 못한 말

동지

노동자 우리의 이름

동지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