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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위기 구청 폐기물업체, 협동조합 만들어 인수한 노동자들

카알바람 2013. 1. 9. 10:12

폐업위기 구청 폐기물업체, 협동조합 만들어 인수한 노동자들

‘협동조합’ 설립해 경영주체 나선 노동자들 “몸 힘들어도 마음 편해…”

김주형 기자 kjh@vop.co.kr

입력 2013-01-08 00:11:09 l 수정 2013-01-09 00:05:24

 

클린광산 협동조합 창립

광주지역 한 구청에서 민간위탁을 받아 생활폐기물·음식물쓰레기 수거, 재활용품 수집·운반을 담당했던 한 업체가 지난해 11월말 폐업 의사를 밝히자 노동자들이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추진해 올해 1월2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4일 ‘클린광산 협동조합’ 창립총회 사진.



 
“몸은 더 힘들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협동조합 기본법(협동조합법)이 지난해 12월 시행된 뒤 노동자가 경영주체로 나서 협동조합 제1호로 탄생된 ‘클린광산 협동조합’(클린광산)조합원과 직원들이 한목소리로 한 말이다.

클린광산은 폐업이 예고된 폐기물 처리 업체의 노동자들이 결성해 오히려 이 업체를 인수해 경영에 나섰다. 지난해 12월14일 창립해 21일 설립신고를 마치고 올해 1월2일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들은 광주 광산구청에서 생활폐기물·음식물쓰레기의 수거 및 재활용품 수집·운반을 위탁받았던 한 업체(동산미화)에서 일해왔지만, 이 업체는 노조가 파업에 나서자 지난해 11월 26일 폐업을 예고해 ‘위장폐업’ 논란을 일으켰다.

고용불안이 현실로 닥치자 노동자들은 대안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광산구청에 직접 제안해, 시설공단을 고민하던 구청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민주노총 소속인 광주지역일반노조 동산미화지회 노동자 9명을 조합원으로 클린광산을 창립하고, 비노조원 5명과 같은 업무를 맡았던 다른 업체(송광미화) 해고자 4명을 직원으로 고용해 동산미화 업무를 승계했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준비한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된 건 불과 1개월 남짓. 여러 어려움에 광산구청이 거들고 나섰다. 협동조합 설립에 대한 제반 조언, 서류준비 등을 도왔고, 생활폐기물 수집업 허가요건인 사무실, 차고지, 차량 3대 등 준비과정 등도 지원했다. 사무실과 차고지는 광주시 소유지를 물색했고, 청소차량 2대를 무상대여하는 형식으로 지원했다. 클린광산은 이와 별도로 차량 3대를 마련해 모두 5대의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채 1주일이 되지 않은 클린광산 조합원과 직원들은 매일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에 모여 조합 운영을 논의한다. 일단 새 차량을 1대 더 신청해 놓고 있지만 차량이 현장에 투입되기까지는 앞으로 3~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그 전까지 낡은 차량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방안과 광산구가 위탁한 5개 구역 가운데 인원 대비 가장 넓은 구역을 맡아서 해야한다는 점 등이 의논 대상이었다.

노조 ‘파업예고’에 업체는 ‘폐업예고’…노조, 구청에 ‘협동조합’ 제안

클린광산 협동조합 설립신고필증

클린광산 협동조합 설립신고필증

 

조용곤 행정실장(일반노조 교육국장)에 따르면,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건 지난해 6월 초다. 12월부터 협동조합법이 발효된다는 걸 알고 활용법을 고민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8월엔 김성복 동산미화지회장에게 제안해 현실적·단계적인 대안으로 유효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동산미화의 폐업이 현실로 닥쳐오게 된 시점이다. 동산미화지회는 지난해 11월26일 파업을 준비해 왔는데, 동산미화에서 파업을 앞둔 24일 폐업을 예고했고, 노조는 이를 ‘위장폐업’으로 보고 광산구청 등에 폐업의 진위여부를 확인해봤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노조는 폐업을 기정사실화 할 것을 구청에 요구하는 한편 폐업의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제안했다. 당시 업체 변경, 시설공단화를 염두에 두고 있던 구청이 긍정적으로 검토해 급물살을 타게 됐다. 12월14일 창립총회에 이어 조합원 9명이 1인당 1백만원씩 출자해 클린광산을 창립하고, 광주광역시에 설립신고를 마쳤다.

광산구청은 12월31일 이같은 상황을 ‘전국 최초 협동조합 설립으로 고용불안 극복한 미화원들’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당시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클린광산협동조합과 월곡1·2동, 하남2지구 생활·음식물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품 수집·운반 대행계약을 체결해 신년 1월 2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며 “클린광산협동조합 모델이 우리 사회 공무노동의 기반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광산구청은 노동자들의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대해 “사업주의 ‘선의’에 의존해야만 했던 위탁업무 고용승계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고 평가했으며, 아울러 △고용불안, 노사갈등의 근본적 해결 △근로자들의 업무 만족도와 효율성 제고 등의 의미를 부여했다.

‘민간위탁’ ‘톤당단가제’ 등 근본문제 해결해야

하지만 협동조합이 설립돼 폐업한 업체를 대신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민간위탁’이 문제의 출발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까지 4곳의 업체가 생활폐기물 등의 업무를 광산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왔으며, 올해부터는 1곳이 더해져 5곳이 위탁받게 됐다.

그 가운데 송광미화 등 2곳은 준직영제 형태로, 지난 20~30년 동안 수의계약을 통해 위탁을 독점해오면서 통상임금 미지급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광산구청은 ‘예산절감’ 등을 이유로 ‘톤당단가제’라는 새로운 운영형태로 동산미화 등 2곳의 업체를 더 선정해 인원과 장비, 인건비를 최소화하며 노동자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 한 해 동안 민주노조가 들어선 송광미화, 동산미화에서는 ‘민간위탁 폐지’ ‘톤당단가제 폐지’ ‘직접고용’ 등을 내걸고 구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해왔으며,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클린광산 또한 폐업하는 동산미화의 업무를 그대로 승계하며 올해 수의계약을 한 상태지만, 광산구청이 이후 공개입찰 방침으로 전환하게 됨에 따라 당장 2014년부터 입찰을 따낸다는 장담을 할 수 없게 돼 협동조합의 지속성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김성복 클린광산 상임이사(전 동산미화지회장)는 “협동조합은 하나의 과정이고 근본적으로는 공단화가 답”이라며 “구의원들이 수익성 문제를 들어 시설공단화를 반대해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익성을 배제하고 공공성을 취지로 한 공단화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위탁 철회 톤당단가제 폐지

생활폐기물·음식물쓰레기 수거 및 재활용품 수집·운반을 담당했던 민간위탁업체 노동자들이 ‘민간위탁 철회’ ‘톤당단가제 폐지’ 등을 내걸고 집회를 하고 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매사에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불과 1주일밖에 안된 클린광산에서의 업무를 조합원이나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송광미화에서 22개월 동안 근무했지만 결국 해고된 이철우(37)씨는 “이전(송광미화)보다 몸은 더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털어놓았다.

동산미화에서 일했던 조합원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임동현(53) 이사는 “동산미화에서는 몸이 아파도 쉬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우리가 주인이니 상차(폐기물을 차에 싣는 작업)를 하다가 몸이 아픈 사람은 차량운전기사로 돌아가면서 일할 수 있다”고 했으며, 또다른 직원은 “상차를 하던 요원이 기사를 하니 요원들 사정도 알고 바쁘면 도와주기도 한다”면서 “그동안 기사와 상차요원들이 임금부터 처우가 달랐다. 기사가 사장과 다를 바 없었다”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노동자가 만든 협동조합 1호라는 점은 모두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던져주고 있다. 조용곤 실장은 “우리가 협동조합을 설립해 직접 운영한다고 하니까 다른 지역 생활폐기물 처리 노동자들이 배우러 온다고 한다”면서 “협동조합이 민간위탁의 현실적 대안이 되니까, 그동안 투쟁해서 사업주를 날리고 업체만 바뀌어도 늘 똑같다고 하던 다른 지역에 모범이 돼야 할 텐데…”라며 부담을 털어놨다.

당장 노동자들이 경영에 나서기 위해서는 청소차량 1대에만 수억원이 들어가는 등 재정문제도 큰 걸림돌이다.

한 조합원은 “초기 출자금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재정적 어려움이 많다”면서 “당장 신규업체라서 그동안 실적 등으로 평가하는 은행권 대출에 제약이 있다. 자치단체 차원의 재정지원과 관련 제도적 장치가 보완됐으면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조합원 미팅이 끝난 뒤 곧바로 은행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