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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왜 나왔나?
핵개발 카드 쥐고 평화협정 압박...美에 공 넘겨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3-03-06 21:03:02l수정 2013-03-06 21:36:51
북한이 5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내고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다. 우리 군은 다음날 대북 성명을 내고 북한의 도발이 있을 시 “지휘세력까지 단호하게 응징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유엔 안보리는 비공개 회의를 통해 새 대북 결의 초안에 합의, 이르면 7일 표결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군당국이 현 정세와 관련해 2,3차 조치를 경고하며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것은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전협정과 평화체제 논의, 북한의 핵개발과 비핵화 회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의 의미를 살펴본다.
◆냉전 해체와 정전협정=1951년 7월 10일 정전회담이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서명한 이래 오늘까지 한국전쟁은 기술적으로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냉전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90년대 초반부터 동북아 주요국 사이의 관계가 압도적인 힘의 ‘불균형’ 상태로 돌아서자, 미국의 체제 위협과 군사적 위협을 현실의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 논의도 직접 당사자인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로 상정해왔다.
북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제도적으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논의를 제안해왔으며, 다른 한축으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전략 차원에서 비대칭전력을 강화해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자위적 억제력 노선’을 통해 핵을 개발해왔다. 지난해 말 로켓 발사에 이어 이번 3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은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
5일 성명에서 북이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주장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북은 9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따라 정전협정이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해왔다.
북은 1994년 4월 28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휴전협정은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잇장으로 되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사실상 주인 없는 기구로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며 대미협상을 제안했다. 그해 5월 24일 북한은 군사정전위를 폐쇄하고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진 북측의 제안에 남측은 1996년 4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제안했으며, 1997년 말부터 2년 여 간 4자회담이 진행됐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됐다.
◆北, 한손엔 평화협정, 한손엔 핵개발= 앞서 언급했듯 북한은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미국에 의한 체제 위협을 제도적으로 제거하려는 전략과 더불어 다른 한축으로 자위적 억제력을 주장하며 핵개발을 지속해왔다.
이로 인해 북미 간에는 여러 차례 핵위기가 불거졌으며, 북핵 문제를 둘러싼 우여곡절에 따라 평화협정 논의도 진척과 중단을 반복하는 곡절을 겪어왔다.
거칠게 요약하면 1차 핵위기 당시의 제네바협정이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공동커뮤니케,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북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논의의 단초들이 마련됐지만, 다시 북핵문제가 악화하면 모멘텀을 잃어버리는 패턴이 반복돼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에 있어 인식차를 드러냈다.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의미 있는 평화체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미국의 인식과 평화체제 논의로 상호 신뢰가 쌓여야 북핵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북한의 인식이 엇갈린 것이다.
◆‘평화협정 논의’ 선차적 과제로 요구=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은 20여 년에 걸친 북미 간 핵협상을 돌아보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2010년 1월 11일 북 외무성이 “위임에 따라” 당사국들에 평화협정 회담을 진행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표현된다.
북은 당시 성명에서 “좌절과 실패를 거듭한 6자회담 과정은 당사자들 사이의 신뢰가 없이는 언제 가도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조선반도 비핵화과정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핵문제의 기본 당사자들인 조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하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이어 성명은 “조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자면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부터 체결되어야 할 것”이라며 “당사자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교전상태에서는 언제 가도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가실 수 없으며 비핵화는커녕 회담 자체가 순조롭게 추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은 북핵 협상 과정을 평가한 데 기초해 평화협정 논의가 선차적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美에 평화협정 압박=이 같은 북의 요구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며 보다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3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다른 한축으로는 ‘비핵화 회담’의 종말을 고하며 평화협정 논의냐, 정세 폭발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북은 지난해 12월 위성 발사 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반발해 외무성 성명을 내고 ‘비핵화 회담의 종말’을 선언하며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를 촉구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12일 3차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제재 움직임에 반발해 이번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는 사실상 미국 주도의 대북 적대정책의 산물이라고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이 다른 당사자인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지속하는 한 정전협정은 유명무실한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결론짓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북은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에서 실질적 조치로 판문점 대표부 활동을 중지하고 북미 군부 전화를 끊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조치의 시점은 키 리졸브 연습이 본격화하는 11일부터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북은 이전에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정전협정을 파기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구속을 벗어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대응해온 바 있다. 이번 성명에서도 북은 한미훈련이 “정전협정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행위의 집중적인 발로”라며 “정전협정의 모든 효력을 전면 백지화해 버릴 것”,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해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의의 타격을 가하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대업을 이룩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길게는 20여 년간 이어져온 북미 협상의 과정에서, 짧게는 지난해 북의 로켓 발사를 계기로 이어져온 북미 대립의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압박하는 한편으로 2,3차 조치를 경고하며 ‘양자택일’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발언 또한 ‘공은 미국에 넘어가 있다’는 강도 높은 표현으로 풀이된다
북한 군당국이 현 정세와 관련해 2,3차 조치를 경고하며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것은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전협정과 평화체제 논의, 북한의 핵개발과 비핵화 회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의 의미를 살펴본다.
◆냉전 해체와 정전협정=1951년 7월 10일 정전회담이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서명한 이래 오늘까지 한국전쟁은 기술적으로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냉전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90년대 초반부터 동북아 주요국 사이의 관계가 압도적인 힘의 ‘불균형’ 상태로 돌아서자, 미국의 체제 위협과 군사적 위협을 현실의 절박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 논의도 직접 당사자인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로 상정해왔다.
북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제도적으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논의를 제안해왔으며, 다른 한축으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전략 차원에서 비대칭전력을 강화해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자위적 억제력 노선’을 통해 핵을 개발해왔다. 지난해 말 로켓 발사에 이어 이번 3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은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
5일 성명에서 북이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주장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북은 9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따라 정전협정이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해왔다.
북은 1994년 4월 28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휴전협정은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잇장으로 되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사실상 주인 없는 기구로서 유명무실하게 되었다”며 대미협상을 제안했다. 그해 5월 24일 북한은 군사정전위를 폐쇄하고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진 북측의 제안에 남측은 1996년 4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제안했으며, 1997년 말부터 2년 여 간 4자회담이 진행됐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됐다.
◆北, 한손엔 평화협정, 한손엔 핵개발= 앞서 언급했듯 북한은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미국에 의한 체제 위협을 제도적으로 제거하려는 전략과 더불어 다른 한축으로 자위적 억제력을 주장하며 핵개발을 지속해왔다.
이로 인해 북미 간에는 여러 차례 핵위기가 불거졌으며, 북핵 문제를 둘러싼 우여곡절에 따라 평화협정 논의도 진척과 중단을 반복하는 곡절을 겪어왔다.
거칠게 요약하면 1차 핵위기 당시의 제네바협정이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공동커뮤니케,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북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논의의 단초들이 마련됐지만, 다시 북핵문제가 악화하면 모멘텀을 잃어버리는 패턴이 반복돼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에 있어 인식차를 드러냈다.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의미 있는 평화체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미국의 인식과 평화체제 논의로 상호 신뢰가 쌓여야 북핵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북한의 인식이 엇갈린 것이다.
◆‘평화협정 논의’ 선차적 과제로 요구=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은 20여 년에 걸친 북미 간 핵협상을 돌아보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2010년 1월 11일 북 외무성이 “위임에 따라” 당사국들에 평화협정 회담을 진행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표현된다.
북은 당시 성명에서 “좌절과 실패를 거듭한 6자회담 과정은 당사자들 사이의 신뢰가 없이는 언제 가도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조선반도 비핵화과정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핵문제의 기본 당사자들인 조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하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이어 성명은 “조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자면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부터 체결되어야 할 것”이라며 “당사자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교전상태에서는 언제 가도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가실 수 없으며 비핵화는커녕 회담 자체가 순조롭게 추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은 북핵 협상 과정을 평가한 데 기초해 평화협정 논의가 선차적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美에 평화협정 압박=이 같은 북의 요구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며 보다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3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다른 한축으로는 ‘비핵화 회담’의 종말을 고하며 평화협정 논의냐, 정세 폭발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북은 지난해 12월 위성 발사 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반발해 외무성 성명을 내고 ‘비핵화 회담의 종말’을 선언하며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를 촉구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12일 3차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제재 움직임에 반발해 이번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는 사실상 미국 주도의 대북 적대정책의 산물이라고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이 다른 당사자인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지속하는 한 정전협정은 유명무실한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결론짓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북은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에서 실질적 조치로 판문점 대표부 활동을 중지하고 북미 군부 전화를 끊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조치의 시점은 키 리졸브 연습이 본격화하는 11일부터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북은 이전에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정전협정을 파기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구속을 벗어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대응해온 바 있다. 이번 성명에서도 북은 한미훈련이 “정전협정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행위의 집중적인 발로”라며 “정전협정의 모든 효력을 전면 백지화해 버릴 것”,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해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의의 타격을 가하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대업을 이룩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길게는 20여 년간 이어져온 북미 협상의 과정에서, 짧게는 지난해 북의 로켓 발사를 계기로 이어져온 북미 대립의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압박하는 한편으로 2,3차 조치를 경고하며 ‘양자택일’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발언 또한 ‘공은 미국에 넘어가 있다’는 강도 높은 표현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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