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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위성발사와 핵 개발은 부당한가

카알바람 2013. 4. 16. 11:26

북한의 위성발사와 핵 개발은 부당한가
[김갑수 칼럼] 약한 주먹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을 닦는 일
김갑수 | 2013-04-15 13:47: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주지하듯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금세기 가장 무도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는 유엔도 반대했으며 이제 당사국인 미국 국민의 절반을 훨씬 넘는 국민도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미국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물론 이 명분도 애초부터 불공정한 것이었지만) 화학무기의 존재는 말짱 거짓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왜 유엔은 금세기 최악의 침략국 미국을 제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인가?

 

반면 유엔은 왜 북한의 위성발사에 대해서는 번번이 제재를 내리는 것인가? 위성 발사는 주권국가의 권리 아닌가? 게다가 북한은 우주조약 가입국이기도 하다. 남한도 올해 1월 30일 나로호 위성 발사에 성공했으며 이에 온 국민이 떠… 들썩하게 축하하지 않았던가? 나로호와 광명성이 뭐가 다른가?

 

나로호 발사 사흘 전인 1월 27일, 일본은 스파이 위성 2기를 발사해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 왜 위성 발사국 10개국 가운데 유독 북한만이 제재를 받아야 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를테면 조갑제건 변희재건 이명박이건 박근혜건 지금 우리 앞에 당장 나타나 제발 좀 설명해 주기 바란다.

 

 

최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쏘다니며 하나마나한 소리를 남발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따른 공약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국제 의무를 준수하는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 진정성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미 알려진 대로 9.19 공동성명은 2005년 9월 19일,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는 대신, 미국 등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에너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합의한 문건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해서 이 합의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 누구였던가? 미국의 부시 아니었던가? 이뿐 아니라 부시는 다음 해 안면을 확 바꾸어 북한을 금융으로 제재하면서 난데없이 위조지폐범으로 내몰았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부시는 북한에게 위조지폐 제작 장비를 인도하면 대화에 나서겠다고 염장을 쑤시지 않았던가? 2006년 북한의 최초 핵실험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3년 후인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도 역시 위성발사에 대한 유엔의 제재 때문이었다.

 

그리고 올 들어 2월 12일에 이루어진 3차 핵실험 또한 위성발사에 대한 유엔의 재재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1월 UN 안보리는 북한의 광명성 3-2호 발사에 대해 유엔 결의 위반이라며 새로운 대북결의안을 발표했었다. 안보리는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2년 임기로 선출되는 10개 비상임이사국 등 15개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는 모두 핵보유국이자 대륙간탄도탄 보유국이다.

 

비상임이사국은 대한민국과 파키스탄 외 10개국인데, 대북 제재 결의 당시 의장국은 파키스탄이었다. 그런데 의장국 파키스탄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도 하지 않았으며, 핵실험을 통하여 이미 10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유엔이 파키스탄의 핵실험과 핵탄두 보유 때문에 경제 제재를 하거나 군사행동을 한 적이 있던가?

 

▲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이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방한에 즈음한 각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한반도 위기를 앞세운 무기 강매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철회와 함께 미국의 군사훈련 중단과 대북 평화협상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뉴스1 박정호 기자

게다가 임박한 3월부터는 서해에서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북을 겨냥하는 핵 항모와 핵폭격기가 동원된다는 점을 북한은 알고 있었다. 북의 3차 핵실험이 2월 12일에 서둘러 이루어진 것은 바로 이 군사훈련이 북침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과 공포감 때문 아니었을까.

 

1991년 걸프전 이후 10여 년 동안 후세인은 내심 후의를 기대하면서 미국의 요구가 부당한 줄 알면서도 그것을 거의 수용했었다. 결과 미국의 사찰단은 대통령궁의 침실까지 선명한 화면으로 들여다보며 선제공격을 위한 충분한 사전정보를 탐지했다. 물론 이때 그들은 이라크에는 화학무기가 없다는 점도 확인했을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미 개전과 승전의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이때 이라크에 무서운 화학무기가 있는 것으로 탐지됐다면 미국은 이라크를 그리도 쉽게 침공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만약 이라크에 비장의 핵무기가 있었더라면?

 

부당한 요구에 하나둘씩 응해준 이라크에 돌아간 것은 전쟁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었으리라. ‘평화는 구걸로 얻을 수 없으며 강한 힘을 보유할 때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은 북한 아니라 세상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야 한다’는 엄중한 현실을 북한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