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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참사, 절차 무시한 원청 지시가 단초?

카알바람 2013. 5. 13. 10:51

현대제철 참사, 절차 무시한 원청 지시가 단초?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입력 2013-05-11 01:11:48l수정 2013-05-11 11:07:27
현대제철 사고 발생 현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아르곤 가스 유출 사고 현장.ⓒ뉴시스



 
10일 새벽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발생한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의 질식사고와 관련해 현대제철 측이 협력업체들에 기존 절차를 무시한 조업을 지시해 발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 희생자 동료들과 유가족들은 현대제철이 전로 보수 작업 완료 이전에 가스배관 작업을 조기에 지시하면서 발생한 참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현장 노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협력업체 '신화'가 진행하는 가스 배관 작업은 전로 보수 작업 마무리되는 다음날인 10일 오후로 예정돼 있었지만, 9일 오후에 진행됐다. 가스 누출사고로 희생된 노동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조업 현장에 투입됐다.

사고 희생자들과 교대했다는 협력업체 동료 김모(28)씨는 "새벽에 작업하기 전에 이미 가스 배관 작업을 했다더라. 우리도 그 이야기를 못 들었는데, 우리랑 교대한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겠나"며 "2일부터 작업해서 오늘 새벽이 마지막 작업이었는데, 가스 작업을 미리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제철 관리 하에 조업 일정이 정해지기 때문에 '신화'가 마음대로 조업 일정을 바꿀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제철 전로 보수 공사 과정에서 아르곤 가스를 배관을 통해 주입하는 작업은 가장 마지막에 이뤄진다고 한다. 전로 보수 업체인 '한국내화'가 전로 보수를 마무리하고 나면, 배관 업체 '신화'가 아르곤 가스 배관 보수 작업을 하고, 전로 가동 전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는 순서로 전로 작업이 최종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동료 강모(40)씨는 "아르곤 가스 배관을 연결한 채 작업을 했더라. 그 작업은 우리 작업이 다 끝나고, 'OK' 해줘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과정 없이 배관이 연결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래 우리가 작업을 끝내기 전까지 현대제철에서 가스 배관 메인 밸브를 잠그고 자물쇠로 봉인까지 한다. 왜 봉인이 해제됐겠냐"고 반문했다.

또다른 동료 심모(45)씨도 "배관을 연결하고 배관 밸브를 여는 작업은 배관 작업을 하는 협력업체도 임의적으로 할 수 없고 원청이 지시해야만 가능하다. 수년째 우리가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가스 배관 밸브를 열어놓고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조업 과정을 어긴 현대제철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제철소 전로 보수 작업을 할 때 아르곤 가스 배관을 원천적으로 잘라놓은 채 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철강업계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아르곤 가스의 위험성 때문에 보통 전로 보수 작업은 가스 배관을 잘라내고 난 후 아르곤 가스가 남아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1~2일 이상 지난 후 시작한다.

아르곤 가스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점을 현대제철 측도 인지하고 있기에 가스 배관 작업 만큼은 가장 마지막에 하도록 지시해왔고,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당연히 기존 절차대로 조업이 이뤄진다고 믿고 작업장에 들어간다.

일각에서는 조업자 및 협력업체 관리인의 안전 조치가 소홀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보수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가스 설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놓는 게 상식인 현장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김씨는 "분진 때문에 방진복과 방진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긴 하지만, 아르곤 가스가 누출되는 일은 조업 과정상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가스 누출에 대한 안전 장치는 필요가 없다. 현대제철 측에서 현장에 가스 누출 탐지 장치를 비치해 놓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7일 동안 진행된 전로 보수 작업이 마무리되기 직전에 사전 예고 없이 가스 배관 작업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아르곤 가스가 전로 내부로 유입되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정확한 유출 경위는 경찰 수사가 더 진행돼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수사 중인 당진경찰서 관계자는 "국과수 조사도 다 안 끝났고, 정확한 경위는 현대제철과 가스 배관 작업을 한 신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더 해봐야 알 것 같다"며 "지금으로선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