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헌법을 무시한 박근혜, 이제는 내 월급마저 본문
박근혜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성과가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으로 빛이 바랬다고 언론들은 떠듭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 중에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본질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기에 반드시 기억하고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통상임금'을 놓고 벌인 박근혜 대통령의 굴욕외교와 헌법 훼손 사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8일 (현지시각) 미 상공회의소 주최 'CEO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라운드 테이블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사람은 대니얼 애커슨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GM 공장이 북한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애커슨 회장께서 이 자리에 오신 것을 보니 철수가 아니라 오히려 투자를 더 확대하려 한다고 생각해도 되겠죠?"라는 말을 했고, 이에 애커슨 GM 회장은 '엔화 약세 현상'과 '통상임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통상임금 문제는 한국GM만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인만큼 꼭 풀어나가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애커슨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에 안도하며 한국에 대한 80억 달러 투자 계획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와 같은 대화와 뉴스 기사를 듣고 두 가지 분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80억 달러짜리 투자를 유치했구나,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야"
" 왜 대통령이 미국 기업 회장에게 '통상임금'을 해결하겠다고 발언을 하지,뭔가 잘못됐다"
GM 회장의 80억 달러 투자와 통상임금 문제 해결 약속을 방미 성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재벌이거나 월급을 받지 않는 사람이거나 돈이 많은 사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재벌을 옹호하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자기 월급을 내놓겠다는 사람입니다.
▲GM 대니얼 애커슨 회장. 출처:연합뉴스
현재 한국GM은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통상임금 소송이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던 상여금에 따른 수당을 최근 3년치(소멸시효) 소급분까지 지급하느냐 여부에 대한 소송입니다. 한국GM이 통상임금 소송에 패소할 경우, 8천억원에서 1조원가량의 미지급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통상임금의 핵심은 초과근무 수당입니다.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에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야간수당,휴일수당 등을 지급하는데 만약 상여금 등이 기본급에 포함되면 통상임금이 오르고, 초과근무 수당 등도 오르게 됩니다.
연장 및 야간,휴일 수당으로 1150만원을 받던 연봉 4140만원 근로자가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 수당이 2170만원으로 약 1천만원 정도 오르게 됩니다. 근로자에게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는 이처럼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국GM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도록 협조(라고 썼지만,협박이라고 읽어야함)해주면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꼭 풀어나가겠다'고 덜컥 약속한 것입니다.
' 재벌을 위한 재벌에 의한 통상임금 논리'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오로지 재벌 편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경총이 주장하는 통상임금 소송 관련 기업 비용과 인건비 증가에 따른 기업의 입장,출처:한국경영자총연합회,한국일보
한국경총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 수십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이것은 기업의 경영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는 통상임금으로 정리된다면 기업들이 인건비 대신 설비와 투자를 더 늘릴 수 있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업은 근로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돈을 고스란히 그들만의 이익으로 챙기고 살았습니다.
▲ 대한민국 대기업의 경영 현황, 출처:새사연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재벌이라고 부르는 38개 기업은 매년 엄청난 당기순이익을 올렸습니다. 매출액 증가율은 차이가 있지만, 재벌총수가 있는 대기업의 당기순이익은 증가했으며, 이는 경제가 나쁘다고 해도 현금이나 자산을 늘렸던 배경 중의 하나입니다.
인건비가 늘어나도 이들은 충분히 설비와 연구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면 기업이 망할 것처럼 얘기합니다.
여기에 오히려 중소기업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 주장하지만, 사실 대기업은 이익이 올라도 중소기업이 적자인 이유는 인건비의 문제가 아니라 요새 이슈가 되는 갑과 을의 문제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통상임금'이 아니지만, 대기업과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은 재벌 논리에 빠져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16년이나 변하지 않았던 통상임금 기준'
통상임금을 정하는 법률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입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에는 '통상임금'에 관한 규정을 정해놓았고, 고용노동부와 기업은 이에 따라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시급, 일급, 주급, 월급 또는 도급 금액’이라 명시하고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계속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통상임금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바로 1997년입니다. 1997년에 만들어놓은 통상임금 규정을 2013년까지 그대로 똑같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1997년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는 2007년 한차례 개정됐지만, 정하여진이 정한이라는 식의 문구들만 바뀌었다.
고용노동부와 기업은 오로지 1997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해석으로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과 규칙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새롭게 제정되는 것이 옳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다른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잘도 바꾸면서도 오로지 통상임금이 명시된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는 아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15년이 넘도록 개정되지 않고 있지만, 대한민국 대법원은 1990년부터 통상임금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리하면서 통상임금에 대한 다양한 판례를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2012년 3월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5년 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만 가지고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재벌의 편에서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를 짓밟고 있는 것입니다.
' 헌법에 명시된 3권분립을 손대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GM 회장에게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 GM은 '통상임금' 소송에 걸려 있습니다. 제기된 소송 가액은 별로 되지 않지만, 소송에서 지면 GM은 전체 근로자에게 1조가량 미지급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 소송과 관련된 발언을 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3권분립 내용,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법원이 판결했던 법리를 뒤집겠다는 의도이자,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3권분립, 즉 입법,사법,행정을 분립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권력분립제도를 위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3권분립의 핵심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정신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통수권자이지만 권력을 남용하거나 독재자처럼 군림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행정수반이 사법부의 판결을 미국기업의 80억 투자 약속을 위해 헌신짝처럼 뒤집겠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일입니다.
▲ 윤창중 대변인 사건으로 남양유업 이슈가 사라진 것을 비꼬는 패러디물.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이나 남양유업, 주진우 기자 구속영장 청구와 같은 정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은 그저 몇 사람의 사퇴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로 흐지부지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통상임금'과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은 헌법을 짓밟는 행위이자, 수천만 근로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입니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어 수당을 더 받는 일은 불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법원이 인정한 합법적인 일입니다. 이것을 마치 기업을 무너뜨리는 근로자들의 욕심이라고 정부와 언론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근로자가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건만 왜 대한민국에서는 그것이 사회를 무너뜨리는 문젯거리가 되고 대통령이 헌법을 짓밟는 행위가 오히려 업적이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윤창중 사건에 매달리며 정신 팔린 사이 대한민국의 헌법은 1970년대처럼 대통령의 발아래 놓이게 되며, 여러분의 급여 명세서에 나오는 수당은 16년 전의 기준으로 계산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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