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토론이 어제 열렸습니다. 박근혜 후보 TV토론은 지난 야권단일 후보 TV토론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진행됐는데, 사실 어제 박근혜 후보 TV토론은 토론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토론이었습니다. '국민면접' 방식이라는 기존 토론과 전혀 다른 방식의 TV토론은 무슨 TV 프로그램처럼 진행돼 처음부터 끝까지 편파적인 TV토론이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TV토론은 시작부터 많은 이슈(?)를 몰고 왔는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TV토론,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짜고 친 고스톱? 대본으로 만들어진 TV토론, 아니 예능프로그램'
박근혜 후보 TV토론은 시작 전부터 온라인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박근혜 후보 TV토론 큐시트가 사전에 유출됐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TV토론 국민면접 '박근혜' 큐시트,
박근혜 후보의 TV토론이 있기 전에 민주당은 철저히 계산된 대본을 가지고 박근혜 후보를 띄워주는 편파적인 TV토론이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었습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자신들은 절대로 그런 대본을 작성한 바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TV토론 직전 온라인에 유출된 큐시트는 일부 포맷이 바뀌기는 했지만, 사회자의 진행 발언과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일치하는 등 처음부터 사전대본으로 만들어진 '특정 후보 띄워주기 TV토론'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온 시간이었습니다.
방송대본과 흡사했던 어제 TV토론에 나온 몇 가지 짜인 각본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박근혜 후보 TV토론 방송에 나온 대형 이력서
국민면접 '박근혜'라는 형식으로 진행됐던 TV토론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대형 이력서였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이력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대형 이력서에는 '자신 있는 요리 비빔밥'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자신 있는 요리를 묻자, 박근혜 후보는 마치 자신이 비빔밥처럼 사회 모든 갈등과 계층을 한데 섞을 수 있는 정치요리사라도 되는 듯 장황한 자기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런 포맷은 토크쇼나 예능프로에서 요리를 통해 여성적인 이미지나 가정적인 온화함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형태로, 실제 요리만 하지 않았지, 거의 '스타의 메뉴'와 같은 수준으로 박근혜 후보를 홍보했던 방송 장면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 TV토론 큐시트와 TV토론 영상
원래 대본에는 '그땐 왜 그랬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실제 방송에서는 최혜림 아나운서는 빠지고, 송지헌 아나운서가 박근혜 후보 의혹에 대해 친절하게 사진 자료를 준비해놓고 그것을 박근혜 후보가 해명하는 모습이 방송됐습니다.
이런 식의 대본으로 처음부터 준비된 형식의 프로그램을 TV토론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은 TV토론이 아니라 마치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토크쇼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했던 사진 자료를 보여주고, 박근혜 후보는 '악의적인 보도였다'라고 강조하는 모습은, 마치 연예인들이 스캔들이 난 뒤에 토크쇼에 나와 해명을 하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어제 박근혜 후보의 TV토론은 토론이 아닌 한 편의 '힐링캠프 박근혜 2'를 보는 듯했고, 이는 과연 어제 TV토론을 토론이라고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송지헌의 박근혜 후보 구하기'
박근혜 후보 TV토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편파적인 사회자의 발언과 진행모습이었습니다. 원래 TV토론 사회자는 편파적으로 후보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하지 않도록 철저히 중립을 지키고 그렇게 진행함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제 국민면접 '박근혜'의 사회를 본 송지헌 전 KBS 아나운서는 박근혜 후보 대변인처럼 보일 정도로 박근혜 후보에 편파적이었습니다.
▲ 국민면접 '박근혜' 사회자로 나온 송지헌 전 KBS 아나운서
송지헌 아나운서가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마치 예능프로그램 사회자처럼 박근혜 후보의 배경이나 과정을 직접 설명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서강대학교 과수석이라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발언과 진행방식은 박근혜 후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자꾸 미화시켜주는 형태를 강조했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TV토론이 아닌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회자와 박근혜 후보 간의 1:1 멘트에만 송지헌 아나운서의 편파 진행이 이루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국민패널(?)이라고 불린 질문자와 박근혜 후보 간의 토론에서도 이런 그의 편파 진행은 극에 달했습니다.
송지헌 아나운서는 패널이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질문을 하면 여지없이 질문을 끊거나 숨을 돌리게 해주기도 하고, 박근혜 후보가 적절한 단어가 생각 나지 않아 고민하고 있으면 적당한 표현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패널이 강도 높게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자 '어떤 부분이 추상적인데요?'라면서 패널의 공격을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썼던 용어들입니다. TV 방송에서 어떤 용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호감도와 인지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송지헌 아나운서는 이런 방송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을 박근혜 후보를 향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송지헌 아나운서는 박근혜 후보의 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나아진다는' 표현을 사용해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 부동층을 사로잡는 발언을 하거나, 박근혜 후보의 성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 쉽지 않은 일을 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국민면접 '박근혜'는 TV토론도 아닌 단순히 '송지헌 쇼' 내지는 '송지헌의 박근혜 후보 구하기'에 불과했습니다.
송지헌 아나운서는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사회를 맡은 후 보름 뒤,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넷방송 프로그램에서 김문수 경기 지사와 함께 시국선언 인사를 폄하하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던 아나운서입니다. 당시 시국선언 인사를 향해 '그 분들은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안돼가지고','공부가 안돼가지고' 라고 그들을 비하했습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받은 부분을 비판을 안 하시는데… 노벨 평화상까지 받으신 분이… 이럴 때는 진짜 따끔하게 북한 김정일한테 경고도 하고 해야지 이런 말씀 안 하시고….'라면서 마치 보수신문의 논조를 그대로 방송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원본 영상:http://kr.news.yahoo.com/live/?idx=song06
'선관위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번 박근혜 후보 TV토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토론회가 공식적으로 선관위의 승인을 받아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TV토론은 지난 야권단일 후보 TV토론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비슷한 포맷이나 시간을 배분해야만 진짜 형평성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 TV프로그램은 완전 박근혜 후보를 화려한 방송기법을 통해 국민에게 홍보해준 사례에 불과합니다.
▲ 박근혜 후보는 TV토론에서 자신의 공약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를 사용했다.
대부분의 대선후보 TV토론은 후보자들이 말로 자신들의 공약과 정책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토론은 얼마나 말을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잘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제 박근혜 후보는 대형 이력서를 비롯해, 사진, 그림으로 작성된 공약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말로 자신의 공약을 전달하는 것과 이렇게 홍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부터 공식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점에 비추어, 바로 전날에 자신의 공약을 다른 후보에 비해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공평성이 아닌 편파적이라고 보기에 충분합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도 노무현- 정몽준 후보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회창 후보도 단독 TV토론을 했으며, 당시에도 연예인들이 나와 "주량이 어느 정도 되냐"라는 시시껄렁한 질문들이 나왔고, 이는 본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어제 박근혜 후보의 TV토론은 그런 수준을 넘어 아예 본격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홍보하는 화려한 문구와 발언, 시각자료로 채워졌습니다.
▲야권단일 후보 TV토론과 박근혜 후보 TV토론은 세트,음악,자막,수화 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과연 이런 식의 단독 TV토론이 국민이 대통령 후보자를 바로 알 수 있는 정책과 공약 설명과 검증의 시간이 될 수 있는지 선관위는 반드시 재검토해야 할 것이며, 방송 중에 나온 사회자의 편파적인 발언과 진행은 선관위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미래를 달리는 신문?'
어제 박근혜 후보의 TV토론이 시작도 하기 전에 갑자기 인터넷에는 박근혜 후보 TV토론 기사가 올라오기도 해서, 많은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박근혜 후보 TV토론이 열리기도 전에 올라온 세계일보 기사.
어제 박근혜 후보 TV토론은 11시 15분에 시작됐는데 세계일보는 박근혜 후보 TV토론 관련 기사를 저녁 8시 17분에 올렸습니다.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인데, '토론에 임했다는 얘기다'라면서 과거형으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지면 신문은 편집 마감이 12시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치더라도, 인터넷 기사를 이렇게 미리 적어 놓고 올렸다는 점은 얼마나 대한민국 언론이 썩어빠져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에는 박근혜 토론보다 송지헌 아나운서가 1위를 차지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대선후보들이 TV토론에 나오는 이유는 그들의 정책과 공약을 검증받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과연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어제 국민면접 '박근혜'라는 명목으로 방송된 박근혜 후보 TV토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박근혜 후보를 홍보하기 위한 방송 그 자체였습니다.
'박근혜 토론'보다 도대체 박근혜 후보를 위한 편파진행을 했던 송지헌 아나운서가 누구인지가 더 주목받았던 어제의 TV토론은 '형평성'은 고사하고라도 언론과 선관위가 '박근혜 구하기'와 '새누리당 정권 연장'에 얼마나 신경쓰고 노력하는지 보여준 '기울어진 대한민국 대선 경기장'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 가슴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