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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김진숙 “다시는 죽지 말자던 강서가...” 본문
눈물의 김진숙 “다시는 죽지 말자던 강서가...”
한진중공업, 노사합의 후 1년 민주노조 죽이기 혈안.. “최강서 죽음 해결이 박근혜 5년 방향타"
김보성 기자 press@vop.co.kr
입력 2012-12-23 18:18:52 수정 2012-12-24 10:14:36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22일 오후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빈소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 도중 최강서 열사에 대한 생각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김 지도위원은 이날 인터뷰 내내 “강서의 죽음은 2003년의 복사판”이라며 사측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토해냈다.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에서 고 박창수(1991), 김주익·곽재규(2003) 열사 이후 또 네 번째로 열사가 나오자 김 지도위원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그것도 자신의 85호 크레인 농성으로 지난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타결된지 1여 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3일 동안에도 김 지도위원은 최강서 열사의 자결 소식에 충격을 받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 채 눈물만 삼켜왔다.
“거액 손배소, 노조사무실 폐쇄, 노노갈등 유발까지
강서의 압박감 얼마나 컸겠나”
지난해 11월 한진중공업 노사합의 이후 영도조선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서른 다섯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매야 했을까?
<민중의소리>는 지난 22일 오후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에서 가진 김진숙 지도위원과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태의 배경을 확인했다. 2003년 열사 정국 이후 무려 9년이 흘렀지만, 다시 서른 다섯의 젊디젊은 노조 간부가 스스로 목을 매야했던 한진중공업의 노동현실은 놀랍게도 너무나 닮았다. 김 지도위원은 이날 인터뷰 내내 “강서의 죽음은 2003년의 복사판”이라며 사측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토해냈다.
2003년 당시 영도조선소 85크레인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끝내 목을 맨 이유도 사측의 정리해고와 노조탄압, 손배소송 등이 원인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조사단은 사 측이 김주익 지회장이 사망하기 4일전 조합원 20여 명에게 손배소, 징계·고소, 고발을 하겠다는 통지서는 물론 구두로 100억원 대의 가압류 압력까지 넣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그 후 9년 뒤인 2012년 12월 21일. 두 아이의 아빠이자 노조 지회 조직차장이던 최강서 열사는 ‘가진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을 원망하며 노조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5크레인이냐 아니냐는 장소만 달랐을 뿐이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희망버스와 노사합의 이후 사측이 민주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왔다 점을 강조했다. 김 지도위원은 “공장을 감옥으로 만들어온 사측은 조업 정상화에 대한 관심은 없이 (친 사측 성향의) 복수노조까지 만들어서 민주노조 조합원을 빼갔다”며 “급기야 소비조합마저 없애고, 노조사무실까지 비우라고 통보했다”고 사측의 노조 탄압을 언급했다.
김 지도위원은 또 “2003년에 사측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소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작년에도 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2003년도에도 노사합의안을 사측이 파기해버리고, 손배가압류 청구하고, 그렇게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동지가 죽었다”며 “9년 만에 똑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사측은 지난해 정리해고 과정에서 벌어진 파업과 투쟁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를 상대로 158억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황이다. 이 손배소 금액은 현 금속노조 한진중지회가 조합비를 100년 넘게 모아도 갚지 못할 어마어마한 액수다. 사실상 받아낼 수 없는 손배소가 노조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노사합의에 따라 사 측은 개인에 대한 손배소는 취하했으나, 노조에 대한 손배소는 철회하지 않았다. 당시 노사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 지회, 개인 등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압류 포함)는 최소화’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국금속노조 부양지부 한진중공업 지회 최강서(35) 열사와 관련해 트위터에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사진은 조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는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빈소 모습.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사태와 관련해 말문을 열었다. 지난 3일 동안 최강서 열사의 자결 소식에 충격을 받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 채 빈소에 머물러왔던 김 지도위원이 22일 오후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빈소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이날 인터뷰 내내 “강서의 죽음은 2003년의 복사판”이라며 사측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토해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사태와 관련해 말문을 열었다. 김 지도위원은 22일 오후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빈소에서 진행된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으로 강서의 압박감이 얼마나 컸겠느냐”고 비통해했다.
“박근혜 경제민주화·국민대통합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과연 들어 있나?
최강서 죽음 해결이 향후 박 정권 5년 방향타“
게다가 특히 올해 초 금속노조에 반대하는 복수노조가 출범하면서 노-노갈등 마저 본격화됐다. 4년 동안 금속노조와 임단협 교섭을 미뤄놨던 사측은 친 사측 성향의 기업별 노조가 교섭권을 확보하자마자 15% 임금인상, 1200만 원의 생활안정지원금 지급 등 다소 파격적인 합의안에 곧바로 서명했다. 사 측과 친 사측 노조가 이런 그림을 만들고 있는 동안에 현 금속노조 지회는 ‘손배가압류 철회, 임단협 체결’ 등을 요구하며 200일에 가까운 천막농성을 펼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올해 초 수주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집단 순환휴업에 돌입했다. 정리해고 사태 이후 92명의 해고자를 재취업 형태로 복직시키기로 결정했지만 이들은 지난 11월 9일 복직이후 곧바로 휴업조치를 당해야만 했다.
김 지도위원은 최강서 조직차장이 사 측의 노-노갈등 조장과 민주노조 무력화 등에 대한 분노가 컸고,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9일 복직이후 4시간 만에 휴직통보를 받으면서 좌절감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노사합의 이후 “사 측은 기존 민주노조에 남는 사람은 휴업에서 복귀시키지 않는 등 노노갈등을 조장해왔다”며 “(지난 열사투쟁의 성과로 만들어진) 소비조합, 병원, 신협, 노조사무실까지 착착 들어내고, 출입금지마저 시켜버리는 모습에 강서의 압박감이 얼마나 컸겠느냐”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김 지도위원은 ‘박근혜 5년..’ 유서내용을 언급하며 “박 당선자가 말하는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에 정작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들어있는 지 의문스럽다”며 “최강서의 죽음이 어떻게 해결되는 지가 이후 박근혜 정권 5년의 방향타이고 시금석”이라고 전망했다.
어쩔 수 없이 복수노조로 갈아타야했던 동료들에 대해서도 김 지도위원은 “이런 상황을 보며 더 힘든 사람은 이 조합원들”이라며 “강서가 자신의 죽음으로 돌아오라 했는데 그 마음을 한 번만이라도 헤아려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사측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에서 김 지도위원은 또 눈물을 흘렸다. 김 지도위원은 “(강서가 죽고) 집회를 한다니 사측은 신관 문을 용접을 하고 관리자들을 대기시켰다”며 “조합원 한 명이 트위터에 용접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글을 올렸다. ‘또 오래갈란 갑다’ 그렇게 올려놓은 것을 봤다.”라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김 지도위원은 “사측은 정문을 용접해 틀어막고, 그물을 치고, 철조망에 전기선을 설치하고 그렇게 또 일단 막고, 문제가 커지지 않으면 된다고만 생각할 것”이라며 “더는 죽이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합의는 형식적 복직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것만이 또 다른 죽음을 막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 말미 최강서 열사에 대한 지난 기억을 떠올리던 김 지도위원은 다시 감정이 북받쳐 올라야만 했다.
“강서 지난 트위터를 보면 ‘나의 행복’이라고 해서 지난 5월 4일 아이들 사진을 뒤에서 찍은 것을 올려놓았다. 그때가 박창수 추모제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강서가 다시는 죽지 맙시다 그런 글을 올렸는데...”
김 지도위원의 말대로 지난 5월 4일 최강서 열사는 자신의 트위터(@kangseochoi)에 "지회장 발언 중... 역대 박창수 열사추모제 중 제일 초라하답니다. 더이상 열사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꼭 살아서 함께합시다"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그러나 유서에 언급된 '악질자본'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불과 7개월 만에 그 자신이 한진중공업의 네번째 열사가 되어야만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나눈 인터뷰 전문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나눈 인터뷰 전문을 정리한 것이다.
-서른 다섯의 최강서 조직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정리해고 당시 경찰이 투입되고 사측이 외부세력 물러가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배신감이 굉장히 컸다. (합의 이후) 설마 다시 그렇게 하겠느냐 생각했는데.. 사측은 조업 정상화에 대한 관심은 없이 복수노조를 만들어서 민주노조 조합원 빼가고.. 노조는 천막농성으로 맞서고, 그동안 도대체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장을 감옥으로 만들어놨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소비조합마저 없애려 했다. 조합원들이 담배 하나 살 곳 음료수 할 곳도 없게 됐다. 급기야 26일 노조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폐쇄 통보를 해버렸다. 거기에다 노동자들이 다 그런 게 있지 않나.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으로 이 보수정권이 다시 연장된다니 본질적으로 절망감을 느낀 것 같다. (강서에겐) 마음의 의지를 하고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한진중공업에서만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에 이어 네 번째 죽음이다.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사측의 약속파기가 제일 큰 원인이다. 2003년도에도 구조조정하고 2년을 싸웠다. 합의안을 사측이 파기해버리고, 손배가압류 청구하고, 이후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동지가 죽었다. 9년 만에 똑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정리해고 이후 크레인농성이 진행되고, 어렵게 사태가 타결됐는데 사 측은 합의안을 번복했다. 2003년에 사 측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소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작년에도 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손배소 금액마저 계속 올렸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2일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빈소에서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노사합의 이후 “사 측은 기존 민주노조에 남는 사람은 휴업에서 복귀시키지 않는 등 노노갈등을 조장해왔다”며 “(지난 열사투쟁의 성과로 만들어진) 소비조합, 병원, 신협, 노조사무실까지 착착 들어내고, 출입금지마저 시켜버리는 모습에 강서의 압박감이 얼마나 컸겠느냐”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사측은 기존 민주노조에 남는 사람은 휴업에서 복귀를 안 시킨다”
-사측은 이번 손배소가 개인이 아닌 노조에 제기한 것이어서 최 열사의 죽음과 관계가 없다고 한다.
=노조는 조합원이 구성하고 조합원이 중심이다. 2003년도에도 노조비를 가압류한 뒤 조합원 개인에게 손배소를 제기했다. 한진중공업이 한 두 번 그런게 아니다. 150억을 내려면 무려 조합원들이 꼬박 모아도 200여 년이 걸린다. 이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왜 없겠나. 소비조합부터 병원, 신협, 노조사무실을 착착 들어내고, 이제 출입금지마저 시켜버리고, 이런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 압박감이 얼마나 컸겠나.
-금속노조가 노동탄압의 한 사례로 지적하고 있는 노조사무실 공장 밖 이전 요구 등도 현 기업별노조와 형평성있게 처리해야한다고 사측은 주장하고 있다.
=2003년 두 사람의 목숨 값으로 현 노조사무실이 있는 복지회관을 지었다. 언론 다 불러서 노사화합의 시작이니 마네 하며 상징적 장소로 규정해놓고 지금 와서 나가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진중공업에서 노조사무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저 건물에 입주하면서 우리 조합원들이 얼마나 울어야 했는지 모른다(눈시울 붉혀)
-최강서 조직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 사 측의 노노갈등 조장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나? 사측은 복수노조의 조합원이 늘어난 것은 기존 노조가 잘못한 탓이 아니겠느냐 보고 있다.
=우선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구조조정과 휴업이 원인이다. 2003년도에 2500명이던 조합원이 800여 명만 남았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동안 옆에 있는 형님이 명퇴당하거나 잘려나가는 것을 봐야했다. 언제부턴가 송별식도 없어졌다. 그런 것을 하면서 공포를 느끼고 있다. 과거에 조선소 산재사고가 많았을 때 자기문제로 느꼈듯, 이제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심각한 상황이다.
도크는 다 비어있고, 이런 상황에서 4년이 넘게 수주를 받지 않고 물량을 수빅으로 빼돌려왔다. 조합원들은 사측이 (지난해 합의와 11월 복직에도) 반드시 또 정리해고 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복수노조(기업별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일거리를 그나마 배치 해주고 있다. 당장 내 목숨과 가족의 밥줄이 걸려있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겠나.
2007년 특별단협 하면서도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수빅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해외로 수주를 빼가지 않겠냐는 불안감이 컸다. 당시 노사는 6000TEU 이하의 배는 수빅으로 수주를 빼돌리지 않기로 합의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수빅서 수주 받은 2척 모두 5400TEU다. 조선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진은 수주를 받을 때 필리핀에서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단다. 단가가 싸니 필리핀 수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도크가 비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텅텅 비어있는 도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지난 노사합의 이후) 사측은 기존 민주노조에 남는 사람은 휴업에서 복귀를 안 시킨다. 이게 무슨 의미겠냐. 하지만 복수노조(기업별 노조)에 가면 안 짤린다는 것이다. 사측은 복수노조가 출범하자마자 현 민주노조 집행부와 4년 동안 체결하지 않았던 임단협을 25일 만에 새노조와 체결했다. 이런데도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느냐. 민주노조에 대한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사측은 이런 것을 노렸을 것이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지난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올랐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크레인. 최강서 열사는 투쟁 기간 내내 이곳을 지켰다.
-지난해 또 다른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85크레인에 올랐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85크레인 농성으로 이번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조합원의 한 사람 몫을 한 것이고, 다른 조합원들도 다 자신들의 몫을 했다. 다만 저는 그때 당시 해고자 신분이었고 출입도 자유롭지 않았다. 당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제 싸움으로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리해고 투쟁 당시 85호크레인을 매일 지켰던 최강서..”
-김 지도위원이 보아온 최강서 열사는 어떤 사람이었나?
=제가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부터 복직투쟁을 벌였는데 출근투쟁을 벌일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하더라. 추운 날엔 음료수를 주머니에 넣어주고 들어가고 그랬다. 그때만 해도 이름을 몰랐다. 당시 노조집행부도 그랬고, 현장조직도 거의 붕괴되어있던 상황에서 강서의 이런 모습에 고마움이 컸다. 85크레인에 올라있을 때에는 매일 크레인 밑에 있었다. 행정대집행 당시 조합원들이 쫓겨나기 전 강서가 밥을 해왔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밥을 못 먹으면 죽을 해오고, 건강이 안 좋으면 낚시해서 도다리 찜을 해오고,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강서는 나와 소통하려고 트위터라는 것을 시작했다. 매일 쪽지를 많이 보냈다. 그런 강서가 경찰과 집달관에 의해 쫓겨나가고 나서는 되게 힘들어했다. 특히 강서는 친 사측 복수노조가 출범하면서 조합원들끼리 갈라지는 것을 매우 아파했다.
사실 내가 몸이 불편하면 다른 사람들은 근처에 잘 못온다.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그런데 강서는 크레인까지 올라와서 고함지르며 누나 밥 안먹으면 나도 안먹는다고 그랬다. 얼마나 트팀없이 싸워왔던 녀석인지를 잘 안다. 조합원들에게 물어보면 알거다. 며칠 전 천막에서 만났을 때도 강서 괜찮나 했더니 누나 몸부터 돌보라고 말하던 친구였다. 그때가 대선 바로 직전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고 며칠 만에 열사정국이 이어져 충격을 받은 노동자들이 또 다른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지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강서가 유서에 남겼던 ‘박근혜 5년 더는 못하겠다’는 한마디가 현재 해고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절망감을 대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을) 뼈저리게 느껴봤기 때문에 다시 이어질 5년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울음)
지금 박근혜 당선자는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곳에 우리 노동자들이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진노동자들은 그 대통합 대상에서 이미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 아닌가. 과연 포함될 수 있겠는가. 최강서의 죽음이 어떻게 해결되는 지가 이후 박근혜 정권 5년의 방향타이고 시금석이다. 이번 사태를 노동자들이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최강서의 죽음에 대해 차기 박 정권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이후 노동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결정하게될 것이다. 만약 박근혜 당선자가 노동자를 화합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최강서 조직차장의 유서를 보면 떠나간 동료들에게 어떻게 지킨 민주노조냐며 돌아오라고 글을 남겼다. 복수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최강서 열사 사태로) 사측은 25일까지 휴무를 때렸다. 사람들이 동요할까 봐서다. 현장 조합원들도 불안할 것이다. 몸은 갔지만 그 사람들이라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여기 남아서 고생하는 조합원들 아침저녁으로 볼텐데... 사실 그렇게 복수노조로 갔는데 고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일거리가 많아서 돈이라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더 힘들 것이다.
또 얼마나 갈등이 심하겠나. 지금 일도 없고, 공장은 감옥 교도소로 만들어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하나하나 뺏긴다는 것은 죽음의 울타리를 걸어가는 것과도 같다. 지옥문 열고 가는거지. 여기서 나만 살아날 방법은 없다. 죽음의 울타리에서는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 계기가 잘 안 만들어졌지만 강서가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 조합원들에게 돌아오라 했는데 그 마음을 한번 만이라도 헤아려 주길 바란다. 나는 그동안 우리 조합원이 복수노조로 갔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한 번도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강서가 트위터에 남긴걸 보면 조합원들이 집회로 모인걸 보고 내 소원에 이루어졌다며 올린 글이 있다. 조합원 집회 사진을 보며 그랬던 사람이 조합원 떠나가는 걸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느냐.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21일 오후 8시 30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신관 앞.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들이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강서 열사를 목놓아 부르며 신관 건물 진입 시도에 나서자 사측 관계자들이 강철봉을 동원해 철문을 용접하고 있다.
“노조간부가 목숨을 끊었는데 용접하는 한진중공업 사측.. 더는 죽이지 말라”
-한진중공업 사 측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 많을 것 같다.
=지금 우리 조합원들이 다 불안한거야. 오늘 아침에도 조합원 한 명이 전화를 했는데 한참을 말을 안 하고 끊더라. 상황이 이런데 사 측은 보셨다시피 집회를 한다니 신관 문을 용접을 하고 관리자들을 대기시키고.. 조합원 한 명이 트위터에 용접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글을 올렸다. ‘또 오래갈란 갑다’ 그렇게 올려놓은 것을 봤다.(눈물)
사측은 많은 겪어왔으면서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일단 막고, 문제가 커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리해고 문제도 노조가 반대할 때 해결했으면 되었을텐데 희망버스가 5차까지 오도록 끌어온 사람들이다. 정문을 용접해 틀어막고, 그물을 치고, 철조망에 전기선을 설치하고 이러고 있다. 사 측에게 400명, 94명 등의 명단은 숫자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하나하나가 생명이다. 사 측은 그 생명에 달린 새끼들, 마누라들이 얼마인지 모르는 거예요. 해고자 명단이 자기네들에게 A4 문서 하나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눈물)
더는 죽이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노사합의는 형식적 복직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것만이 또 다른 죽음을 막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다면?
강서 트위터에 보면 ‘나의 행복’이라고 해서 아이들 사진을 뒤에서 찍은 것을 올려놨더라. 지난 5월 4일이었는데.. 박창수 추모제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때 강서는 다시는 죽지맙시다 그런 글을 올렸는데.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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