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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 해고노동자 빈소, “비정규직 현실에 자책하더니... ” 본문
현대중 해고노동자 빈소, “비정규직 현실에 자책하더니... ”
“이씨는 마음이 곱고 강직한 친구, 현대차·쌍용차 투쟁 등에 자괴감 많았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입력 2012-12-24 08:57:41 수정 2012-12-24 10:28:22
ⓒ민중의소리
22일 투신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모(41)씨의 빈소가 차려진 울산대학교병원 의 모습이다.
22일 오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모(41)씨가 자신이 사는 울산 동구 소재 아파트 19층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뒀다. 다음날 오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는 충격에 빠진 가족과 지인, 지역 노동계 인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씨는 1997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뒤 지난 2003년 노동조합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씨는 이를 이유로 해고됐으며, 그 이후 노조활동 중 겪은 폭력으로 힘들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투신한 날은 이씨의 큰 형님 손자의 돌잔치가 있었다. 한 자리에 모였던 가족들은 홀로 떨어져 지내던 이씨가 몸을 던졌다는 경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씨의 지인들 역시 불과 한 시간 전까지 함께 있던 이씨가 홀로 투신했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고인의 장례식장 접견실 안 벽면에는 이씨가 생전에 투쟁하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많은 동료들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고 '하청노조 사수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피켓을 들고 투쟁하고 있었다.
ⓒ민중의소리
22일 투신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모(41)씨의 빈소가 차려진 울산대학교병원 의 모습이다.
전날 지인에게 전화걸어 "손이 떨려 운전을 못하겠다" 울먹여
이씨의 지인들은 고인이 최근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송전탑 농성, 쌍용차 철탑 농성 등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최근 현대차 송전탑 농성장을 홀로 찾기도 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는 이씨가 투쟁 중 겪은 폭력과 탄압으로 트라우마 증상을 겪었으며, 이것이 최근 현대차, 유성,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과 한진중공업 최강서씨의 자결 소식을 접하면서 재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씨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파업투쟁과정에서 사측과 용역들이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을 접한 뒤 지난 2004년 크레인에서 경비에게 폭행당했던 일이 떠올라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최모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는 노조 전 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손이 떨려 운전을 못 하겠다"고 울먹이며 전화를 걸었다. 이에 이씨의 지인들은 투신 당일인 22일 오전 이씨와 함께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입원치료를 하려 했으나 약을 처방받고 며칠 뒤 다시 병원을 찾기로 했다.
이후 이씨는 지인들과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은 뒤 안정을 찾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회사와 용역들에게 폭행당하고 피 흘리는 모습을 보니 내 책임이 큰 것 같다"며 연신 자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지인들이 돌아간 뒤 약 1시간 후인 오후 5시 30분쯤 몸을 던졌다. 이씨가 투신하는 모습을 목격한 아파트 경비가 즉시 신고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이씨의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가 남겨둔 자필로 쓴 글에는 "노동자의 영혼 가까운 곳에서 몸을 담고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활동가로 벗들과 동질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일찍 변화를 맛보게 업체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그러나 현실과는 너무 많은 거리가 있다...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동지들이 가는 길에 희망만이 가득하길 바란다. 죄송하다는 말 다시 한번 전한다"는 말이 남겨져 있다.
"심한 폭행 당한뒤 구속 수감됐다"..스트레스와 우울증상 보여
1997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이씨는 지난 2003년 노동조합을 만든 발기인으로 참여해 초대 노조 조직부장을 역임했으나 한 달여뒤 곧바로 해고됐다. 그는 2004년 2월 14일 동료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故박일수씨의 분신 3일 뒤 현대중공업 선박건조장 1도크 앞에 있는 크레인을 점거해 30m 높이의 운전석에서 5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금속노조 울산지부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사측의 경비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끌려내려왔고 곧바로 구속 수감됐다.
이후 이씨는 2006년까지 약 3년동안 생계비 지원 없이 노조 활동을 계속했다. 동료들은 이씨가 활동 중 현대중공업과 경비대에 수없이 폭행을 당했고, 그것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결국 이씨는 생계를 위해 노조 활동을 그만두고 택배기사를 했고, 죽기전까지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금속노조 울산지부는 24일 오후 6시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이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한다. 지역노동계는 이씨의 장례를 노동자장 5일장으로 치르기로 가족들과 협의했다. 이들은 26일 오전 8시30분 노제를 치른 뒤 열사들의 묘역인 양산 솔밭산에서 하관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마음이 곱고 강직한 친구..비정규직의 처참함에 자괴감 많았다"
ⓒ민중의소리
22일 투신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모(41)씨의 빈소가 차려진 울산대학교병원 의 모습이다. 접견실 벽면에 이씨의 생전모습을 담은 사진이 붙여져 있다.
고인과 15년을 알고지내 온 지인 윤모씨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며 슬퍼했다. 그는 "이씨는 마음이 곱고 강직한 친구였고 정이 많았다"며 "누구보다 앞장 서서 정면에 나서는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씨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보며 비정규직의 처참함에 대한 자괴감이 많았다"면서 "2012년 대선 결과를 보고 '이 상황이 5년동안 지속돼야 하는가'하는 절망감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음은 여려도 몸을 던질 용기는 없는 친구였는데..."라며 "마음의 상처를 받아 그렇게 올라갔나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곁에 있던 동지를 또 잃게 될까봐 두렵다"고 전했다.
고인과 함께 노조활동을 하던 조모씨는 이씨에 대해 묻자 고개를 떨구며 담배를 물었다. 그는 "이씨는 경향과 정파를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스펀지처럼 사람을 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는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주려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며 "사측에서 '이OO때문에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냐'고 회유해서 동료들이 이씨의 출입증을 빼앗고 강제로 차에 실어서 출퇴근하는 문 밖으로 던져놓은 일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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