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손배가압류, 배달호 열사 10주기...“그가 원한 세상은 아직도” 본문

세상 이야기

손배가압류, 배달호 열사 10주기...“그가 원한 세상은 아직도”

카알바람 2013. 1. 10. 10:05

손배가압류, 배달호 열사 10주기...“그가 원한 세상은 아직도”

‘배달호 열사’에서 ‘최강서 열사’까지...반복되는 비극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중략)...동지들이여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 나는 항상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 볼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우리가족 보살펴 주기 바란다. 미안합니다”
- 고 배달호 열사 유서

2003년 1월 9일, 배달호(당시 50세) 두산중공업 조합원이 사내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해 사망했다. 사망 후 그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두 쪽짜리 유서에는 회사의 노조탄압과 손배가압류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해고된 조합원들과 그 가족에 대한 걱정 또한 담겨져 있었다.

배달호 열사가 사망한 지 10년. 그가 몸을 태우며 항거하고자 했던 노조탄압과 손배가압류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최강서 한진중공업 열사가 그와 똑같은 이유로 목을 매달았을 때, 그는 노동자광장 위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출처: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 열사’에서 ‘최강서 열사’까지

배달호 열사 10주기를 맞은 지금, 노동계와 민중진영은 비상시국을 선포한 상태다. 10년 만에 돌아온 열사정국이었다. 노동계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가압류와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10년 전 배달호 열사 사망 이후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배달호 열사가 사망할 당시, 두산중공업은 노조간부들을 상대로 6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조합원들의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했다. 2002년 파업으로 인해 해고된 조합원들은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었고, 징계된 조합원들도 상당했다.

배달호 열사가 사망한 뒤, 두산중공업은 노조와 조합원에게 청구했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철회했다. 18명의 해고자 중 지도부 4명을 제외한 14명은 복직한 상태다. 2003년 당시 두산중공업지회장 직무대행이었던 강홍표 배달호열사회 회장은 “열사투쟁의 결과로 회사는 개인과 노조에게 가했던 손배가압류를 모두 풀었다”며 “하지만 4명의 해고자는 여전히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자본의 신종 노조탄압 수법인 ‘손배가압류’ 문제가 확산되면서 회사가 서둘러 손배가압류를 철회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같은 해 김주익 열사의 사망을 비롯해, 손배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곡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후 10년 동안 투쟁사업장들은 내내 회사의 손배가압류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2년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조직차장이 노조 회의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158억 원에 달하는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와 노조탄압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 자본...(중략)...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지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노동자광장 위, 배달호 열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똑같은 이유로, 똑같이 반복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배달호 열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출처: 두산중공업지회]

“오늘 열린 추모집회에서 조합원들이 추모사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열사가 지켜보는 민주광장을 향해 함성을 한 번 외치고, 두산중공업 본관을 향해 한 번 외치고, 우리 자신을 향해 한 번 외쳐보자고 했어요. 항상 우리를 지켜보는 열사를 향해, 그리고 내 자신을 향해 앞으로도 싸우겠다는 외침이죠. 배달호 열사도 똑같은 마음 아닐까요.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한다는...”

10년 전 두산중공업지회에서 배달호 열사와 함께 투쟁했던 강홍표 배달호열사회 회장은 조심스럽게 그의 마음을 가늠해 본다. 여전히 10년 전 암흑 같았던 시대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끝까지 투쟁해 반드시 승리해 달라’던 배달호 열사의 유언대로 살고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사실 두산중공업지회는 겨우겨우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10년 전, 조합원들까지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면서 모든 투쟁이 위축됐으니까요. 하지만 거의 모든 조합원들은 민주노조를 사수해야 한다는 마음은 갖고 있죠.

열사가 원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히려 10년의 역사가 멈춰선 것만 같다. ‘절망’이라는 바이러스가 노동진영에 퍼지면서 노동자들의 죽음도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는 있고, 10년의 역사를 바꿔보겠다는 노동자들도 남아 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열사들의, 자신들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또 한 번 투쟁의 채비를 갖춘다.

“문제는 10년 전 열사의 죽음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대안이 없으면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는 거죠. 사실 기존에 있던 노동자들이 안일하게 정치가 무엇인가를 해 주지 않을까, 하며 정치권에 기대기도 했잖아요.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10년 뒤에도 열사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지 못한 거예요. 냉철하게 우리를 평가하고, 다시 투쟁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