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박일수 열사 9주기 추모집회 본문
금속노조 울산지부는 14일 저녁 6시 현대중공업 정문 건너 인도에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고 박일수 열사의 9주기 추모집회를 150여 명의 울산지역 노동자들과 시민사회, 정당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가량 열었다.
박일수 열사 추모집회에 참석한 금속노조 울산지부 노조원들이 회사 건너편 인도에 앉아 집회를 기다린다. (이정호 기자)
강성신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대회사에서 “열사를 잊으면 또 다른 노동자가 죽는다”며 “열사정신을 이어받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매진하자”고 호소했다. 이어 민주노총 울산본부 조이영자 조직국장이 고 박일수 열사와 같이 노조활동을 한 조성웅 시인의 추모시를 낭독했다. 조 시인은 추모시에서 박 열사를 “늘 ‘시작’이었고, 늘 ‘활력’이었다”고 회상하면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썼다.
한영선 금속노조 울산지부장은 “박일수 열사를 잃은지 9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반성 속에 열사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라고 외쳤던 열사의 뜻을 분명히 새기자”고 말했다. 우상수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차장은 “오늘이 초콜릿을 나눠 먹는 발렌타인 데이라는 건 알았지만 박일수 열사의 기일인줄은 몰랐다”며 “다섯 달째 진행중인 송전탑 농성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열사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어제(13일) 오전 현대중공업 안에서 작업 준비 중에 사망한 사내하청 노동자 정모 씨(57)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회사 관리자들은 아침엔 옆 기업에서 ‘추락사가 있었으니 안전띠를 반드시 매라’고 주의를 줬는데 2시간 뒤엔 심근경색으로 서 있다가 쓰러져 죽었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 지회장은 “어제 고인이 현대중공업과 가까운 울산대학교병원에 안치돼 있었는데, 2시간 만에 유족들이 와서 동의 하에 남구 삼산동의 울산영락원으로 시신을 옮겼다고 했던 회사 말과 달리, 전라도에 살던 유족들은 어제 오후에야 울산에 왔다”며 고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집회에는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과, 통합진보당 이은주 전 시의원, 동구의회 김경덕, 황보곤 구의원, 진보신당 권진회 울산시당위원장, 이성규 동구 주민회장, 정후택 동구 비정규센터장 등도 참석했다.
박일수 열사 분신과 장례투쟁 경과
박일수 열사는 2002년 3월 24일 48살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주)인터기업에 입사해 용접공으로 일하다 2003년 8월 출범한 하청노조에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박 열사는 9년 전인 2004년 2월 14일 새벽 4시50분께 현대중공업 안의 4,5도크 뒤 선실생산부 사무실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철폐를 호소하는 유서 3장을 점퍼 주머니에 넣어 벗어 둔 뒤 휘발유를 몸에 붓고 분신해 숨졌다. 유서에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등의 표현이 들어 있었다.
박 열사는 4대 보험조차 가입 안 되는 열악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분노해 문제해결을 위해 2002년 9월 정규직 노조를 방문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박 열사는 2003년 6월부터 인터기업 사장을 만나 다른 하청기업과 동일한 임금인상분 지급, 주휴수당 및 월차수당 지급, 휴일근로 초과근로수당 지급, 예비군 훈련시간의 유급 인정, 설 휴가 하기휴가 70% 유급인정 및 그 전에 체불되었던 의장부 소속 근로자 60명의 체불임금을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회사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열사는 2003년 7월 22일 자신의 명의로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유인물 수만 장을 만들어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같이 사용하는 현대중공업 식당에 배포하고, 하청업체 사장을 임금 미지급으로 고소했다. 현대중공업은 박 열사의 유인물 배포 이후 하청업체를 압박했다.
결국 박 열사는 2003년 연말 현대중공업 출입증의 유효 기간이 종료하자, 현대중공업은 박 열사가 인터기업을 퇴직했다는 이유로 사내 출입증 발급 갱신을 거부해 사실상 해고됐다.
2004년 2월 14일 박 열사 분신사망 이후 지역노동계는 울산지역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와 별도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자체 진상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지역대책위는 매일 현대중공업 주변에서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 노동자들이 부상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2월 17일 3명의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간부들이 현대중공업 안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으나 5시간만에 회사 경비들에게 매 맞고 끌려 내려왔다. 이 가운데 2명은 불구속 기소됐으나 이운남 하청노조 조직부장은 구속됐다. 이운남 전 조직부장은 지난해 12월 22일 저녁 자신의 아파트 19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지역 대책위는 30여 차례 항의집회를 열면서 현대중공업에 협상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도 “분신사건의 정치적 이용”이라며 반발해 50일 넘게 분신투쟁이 이어졌다.
경찰은 2004년 3월말 현대중공업의 업무를 방해하고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며 대책위 지도부 6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이헌구 당시 민주노총 울산본부장과 조성웅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위원장 등 2명을 구속했다.
당시 금속연맹은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반노동자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제명을 결의하자 노조는 이에 맞서 “상급단체 사업 불참”을 선언했다.
지역대책위는 2004년 5월 7일 현대중공업과 유족보상금 지급, 사내하청노조의 활동 보장, 하청업체에 대한 지도감독 철저 및 고용보장 노력, 하청노동자 차별해소 및 처우개선, 분신사건 관련 민형사상 책임 불문 등에 합의해 54일간의 장례투쟁을 마무리했다. 박 열사의 장례식은 분신사망 56일만인 5월 9일 열렸다.
박일수 열사 분신투쟁 일지 (2004년)
2.14 - 박일수 열사 현대중공업서 분신자살 - 민주노총 지역대책위 구성
2.15 - 현대중노조, 대책위 불참 선언
2.17 - 현대중 협력사 해고자 3명 사내 크레인 점거농성
2.18 - 대책위 항의농성 중 현대중 직원과 충돌 20여명 부상
2.21 - 민주노총 영남노동자 대회
2.23 - 민주노동당 소속 공직자 현대중에 사태해결 촉구
3. 9 -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3.11 - 현대중 직원, 분신대책위 집회에 맞서 회사 방어조직, ‘현중사랑 자원봉사단’ 발대
3.13 -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3.16 - 울산 동부서 분신대책위 관계자 6명 체포영장 발부
3.18 - 분신대책위, 현대중에 45개항 요구
3.22 - 분신대책위, 정몽준 낙선운동 등 총선연계투쟁 선언
3.26 - 금속연맹 중앙위원회서 현대중노조 제명 결의
3.29 - 대책위 관계자 2명(이헌구.조성웅) 구속
3.29 - 민주노총, 분신관련 잔업거부(30일까지)
3.31 - 현대중노조, 상급단체사업 불참 선언
4. 7 - 합의
4. 9 -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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