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이 거대한 음모에 의해 움직인다는 이른바 ‘음모설’을 그리 신뢰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통합진보당 사태는 문재인, 유시민, 심상정·노회찬, 조준호. - 이렇게 5인만 밀실 합의를 했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시민이 진보세력을 통째로 안고 민통 대선후보 문재인에게 가 붙기로 사전 합의가 되어 있었다고 본다. 유시민은 온갖 굴욕을 감수하면서 또는 갖은 감언이설을 구사하며 진보 통합을 이뤄냈다. 물론 그들이 넘어야 할 벽은 민노당계와 이정희였다. 이를 위해서는 통합진보당에서 세력의 우위를 확보해야 했다.
총선 전 이정희 선본의 관악을 문자 건을 ID추적이…불가능한 서울대 게시판에 터뜨린 자는 누구인가. 곧이어서 민통당 지역사무실 건물에 나붙은 ‘이정희 종북’ 플래카드는 또 누가 시켜 한 일이었을까? 또 곧 이어서 문재인은 ‘종북몰이는 안 된다’고 점잖게 타일렀다. 문재인은 또 왜 후보 사퇴 압력을 받으면서도 버티고 있던 이정희를 부산에서 급거 상경하여 만났던 것일까? 결국 문재인을 만난 이정희는 사퇴하고 말았다. 내가 아는 바로 그들은 A라 말하고 A, B 양면으로 행동하며 결국은 B를 취하는 수법에 능한 집단이다.
자기들의 유명세를 과신한 유심노와 민주노총의 힘을 믿었던 조준호는 일단 총선 결과에 기대를 걸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명세에 비해 바닥 실력이 부족했고 여기에 과욕과 성급함까지 작용해 총선 결과 몰락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조준호를 앞세워 진상보고서를 터트린 후 이정희에게 함께 가자고 윽박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절대 탈당을 하지 않겠노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당의 대선후보로는 심상정이 일찌감치 점지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정희와 민노계 당원들의 완강한 벽에 부딪혔다. 한 번의 거짓은 무수한 거짓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그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정희를 끌고 가지 못할 바에야 그들을 철저히 죽여 놓고 가야 한다. 그런데 이정희 패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종북’뿐이었다. 유시민은 말한다. “통합진보당은 사형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 이미 사형이 집행된 당”이라고. 그들은 화급히 떠나 진보정의당을 차렸다. 문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심상정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① "당 행사에서 애국가를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냐?" -조준호 진상보고서 직후 당시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
②“국기나 애국가를 부정하는 정신에 대해선 전혀 찬동하지 않는다. 그런 정치세력과 정치적 연대를 할 생각이 없다.” - 민통당 대선후보 문재인,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홍재철 목사에게
③“누구를 지칭하지는 않겠지만 국민은 그것(이정희의 TV토론)을 보고 너무 크게 실망했다. 저는 19대 원내대표가 돼서 비례부정선거에 대해서 두 의원(이석기, 김재연)을 자격 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또 일부 진보세력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공개적 질책을 했다. 우리가 아무리 진보를 지향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너무 지나친 분탕질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 민통당 원내대표 박지원
④“지난번 야권 연대는 마이너스 연대였다. 연대를 하려면 대의명분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절차가 투명해야 한다. 내가 대표였다면 저런 연대는 안 했다. (최근 이정희 대표가 복귀했는데) 축하 난도 안 보냈다.” - 민통당 비대위원장 문희상, <중앙 선데이> 인터뷰
나는 대선 정권교체에 실패한 제1책임은 문재인, 2번은 유시민에게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국의 진보세력을 초토화시키는 죄악을 범했다. 그러고도 가증스럽게 민통은 새누리와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에 합의했다. 그들은 두 사람을 끝내 제명시킴으로써 통합진보당 사태의 책임과 대선패배의 책임을 통합진보당과 이정희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자충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의당 창당이 유심노의 자충수였듯이. 통합진보당은 당력을 총동원하여 자격심사에 대응해야 한다. 오히려 자격심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거리였는지를 전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이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킬 수가 있다. 진실은 통합진보당의 편 아닌가. 차제에 민통당을 붕괴시켜 제1야당으로 올라서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철수를 활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도 불사해야 하며, 닳아빠져 흐물흐물해진 민통의 젖줄 호남을 직접 공략하는 전략도 거침없이 구사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