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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노조가 ‘내부 감시자’ 자처한 이유

카알바람 2013. 5. 6. 10:42

통계청노조가 ‘내부 감시자’ 자처한 이유

국민생활과 밀접한 통계...현실 반영 못하고, 외압에 흔들리기도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입력 2013-04-29 18:32:40l수정 2013-05-06 09:24:57
 
19세기 영국 총리를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통계는 어떤 현상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일정한 체계에 따라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계의 생명은 '정확성'이다. 정확하지 않은 통계는 쓸모없는 숫자에 불과하게 된다. 잘못된 통계는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고, 한 발 더 나가 통계를 만드는 주체가 아예 통계를 조작하여 대중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에서 매월 발표하는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착시현상을 불러오기 딱 좋다. 고용노동부는 매월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 표본을 선정해 '사업체노동력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다. 고용노동부가 28일 발표한 3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2월 기준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33만원이다. 언론은 "근로자 1인당 평균 임금 333만원" 등의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이 보도를 제목만 본 독자는 "우리나라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이 333만원이구나"라고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조사에는 1~4인 근무하는 영세사업장은 제외돼 있다. 그런데 이 규모가 만만치 않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1년 5월 기준 1~4인 사업체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39.6%였다. 결국,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하는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분의 1 이상의 저임금 노동자를 반영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과도 거리가 멀다.

통계가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정부에서 발표하는 실업률과 체감실업률, 물가상승률과 장바구니 물가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정부 실적을 과대 포장하기 위해 통계를 조작했다가 들통난 경우도 있었다.

통계청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소비자물가지수 등 58종의 통계를 생산하고 있다.

통계청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소비자물가지수 등 58종의 통계를 생산하고 있다.ⓒ통계청



국민 생활과 깊숙이 연결된 통계, 거짓말을 한다면

통계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은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살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통계가 거짓말을 할 경우 그 파급력은 질적으로 다르다. 현대사회는 통계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통계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일 현재, 387개 기관에서 905개의 통계를 생산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에서 33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406개, 공사·공단 등 지정기관에서 161개의 통계를 만들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숫자의 홍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연구자, 기자 등 제한적이지만, 사실 통계는 국민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각 부처가 통계청에서 생산하는 통계에 기반해 업무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통계청에서 생산하는 가계동향조사는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소득과 지출을 세부 품목별로 조사하는 것인데, 소득분배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수립의 기초자료가 된다. 최저생계비 산정, 취약계층 지원사업, 노동자 임금기준의 결정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등록금을 산정할 때도 가계동향조사(도시근로자 평균가계소득)을 참고하도록 돼 있다.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 외에 매월 경제활동인구, 소비자물가 등을 조사해 발표한다.

기재부 영향권 아래의 통계청, 재벌 입김에 흔들리기도

통계가 정책 입안의 기본 자료가 되는 만큼, 사회현상을 제대로 짚어낸 맞춤형 정책을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 생산이 중요하다. 그러나, 통계 생산의 중추조직인 통계청은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조가 아니다. 통계청이 기획재정부 산하 외청이어서 통계전문가도 아닌 기획재정부 간부가 통계청장을 맡아왔다.

안성문 통계청노조 조직국장은 "영국, 캐나다 등은 통계전문가들을 통계청장에 앉히고 임기도 최소 4년 이상 보장하는데, 우리의 경우 임기가 2년 이하였고 청장이 임기를 마치면 다시 기획재정부로 복귀했다. 통계청장에 재임하는 동안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향후 기획재정부 안에서 자기 입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통계청이 기획재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재벌의 입김에 스스로 무너진 사례도 있다. 통계청은 매달 481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조사한 뒤 품목별로 각기 다른 가중치를 반영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물가 변동을 추적하는 중요한 경제지표다. 또 국민연금, 최저임금 등의 결정이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돼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품목과 각 품목에 대한 가중치 등은 기획재정부장관과 통계청장 등이 참가하는 국가통계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2011년 보험업계 입김에 의해 물가지수 개편 때 생명보험료가 빠진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행이 "생명보험료가 민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앞으로 비중이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며 생명보험료를 물가지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통계청에 전달하는 등 생명보험료가 물가지수에 포함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조사품목 개편안을 결정하는 국가통계위원회 회의 하루 전날, 당시 우기종 통계청장이 서울시내 ㅈ호텔에서 삼성생명 곽 아무개 부사장을 만났고, 다음날 회의 결과 생명보험료는 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로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부적절한 시점에 부적절한 만남이 부적절한 결과를 가져온 것만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주요 품목을 정해 물가 상승을 관리했었는데, 생명보험사 입장에서는 생명보험료가 물가지수에 포함되면 보험료 인상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반면, 민간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생명보험료가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에서 빠지면서 소비자물가지수는 그만큼 하락하게 되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소비자물가지수와 연동된 국민연금, 최저임금 등에서 그만큼 손해를 본다. 이같은 사실은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이 지난해 통계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밝혀내 뒤늦게 알려졌다.

통계청노조, 독립성강화특위 출범시켜...

최근 통계청노조는 '통계청 독립성 강화 특별위원회' 출범시키고 '국민을 위한' 통계청 위상 강화에 나섰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각종 통계가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만큼 통계청이 외압을 받지 않고 공정하고 정확한 통계를 생산할 수 있도록 내부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특위는 통계청 내부 인사 5명과 외부 자문단 등으로 구성됐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안성문 통계청노조 국장은 "통계 설계, 집계, 공표 과정에서 혹시나 있을 외부 압력에 대해 사전에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면서 "조직적, 인적, 직무수행 과정에서 독립성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성문 위원장은 "영국 통계청의 경우 통계의 공적인 특성을 감안하여 행정부 수장인 수상이 아닌 의회에 직접 보고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행정부로부터의 중립성 확보를 2007년에 입법으로 해결했다. 호주는 7년 임기의 통계청장을 통계 전문가 중에서 선출해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도 통계전문가를 통계청장에 앉히고 임기도 최소 4년 이상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 통계청도 중립성과 전문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차원의 보강작업이 빠른 시일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