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법의학 전문가 김인성 교수는 작년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뺑소니사건’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과학자로서 이만큼 적확한 표현을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로그 기록에 기초한 사실판단일 뿐 정치적 해석을 담은 가치판단은 아니다. 물론 여기서 가해자란 유시민·조준호·심상정과 그 추종세력을, 피해자란 이정희·이석기·김재연과 민노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사태 발발 1년이 경과한 지금, 아직 통합진보당 사태는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대한 국회 자격심사가 발의 중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표가 나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대관절 무엇이었나…? 바로 말해 그것은 ‘범죄 정치인들이 저지른 당권 찬탈극’이었다.
따라서 나는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기존의 용어 사용에 불만을 제기한다. 작년 5월 2일 이후부터 여태 지속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더 이상 ‘사태’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정의되어서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 사태’가 아니라 ‘5·2 진보당 쿠데타’로 개칭되어야 마땅하다.
먼저 이 쿠데타의 배후에는 부정수를 쓰고도 자파 의석 확보에 실패한 유시민과 조준호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진상조사를 했고, 그들이 ‘총체적 부실부정’을 발의했으며, 그들이 ‘비례대표 전원사퇴’까지를 주장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부정수를 입증해 준 측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이석기와 김재연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부정 범죄로 구속 기소할 수 있었던 인사는 의외로도 유시민의 국참계(오옥만, 고영삼)와 조준호의 민주노총계(이영희, 이정훈)였다. 이것은 보통사람의 상상이 미치는 범주 밖에 있는 희한한 일이기도 했다. ‘극도의 비현실은 비현실보다 현실에 있다’는 말이 있긴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정상적(?)인 범죄자라면 자기들의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는 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범죄를 이용하여 경쟁자들을 끌어내리고 나아가 당권까지 장악하려 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민노계를 얕잡아 보았으며 동시에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한꺼번에 알려 준 결과가 되었다.
유시민의 요구대로 경쟁 부문 비례 전원이 사퇴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민노계 비례의원의 전멸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전략을 바꾸어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이뤄내려 했을까? 만약 그렇게 됐다면 필경 민노계의 붕괴와 이정희의 대선 출마 좌절로 현실화되었을 것이었다.
조준호, 심상정, 유시민은 각자 나름대로의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조준호의 욕망은 민주노총계 이영희를 당선시켜 당 대표 직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면 소박한(?) 것이었다. 한편 심상정의 욕망은 대선후보가 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시민의 욕망은 심상정을 달고 문재인에게 가서 야권 연대의 메이커가 됨으로써 차기 정권의 실세로 올라서 보려는 것이었다. 덩달아 자기 주도로 당의 대선후보를 만들면 안고 들어온 8억 부채도 무난히 당에 떠넘길 수가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터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합작하여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무리수는 더 큰 무리수를 빚는 법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조·중·동에 의탁해 이정희와 민노계에 대한 종북몰이를 기도했다. 여기에 유독 유시민과 심상정이 적극 가담한 것은 두 사람의 욕망이 남달리 컸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나아가 그들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그들의 종북몰이는 그들보다 영악한 새누리당에 의해 문재인에게로 불똥이 튀었고, 이정희를 배제한 불완전한 야권연대는 대선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으니 그들이야말로 자기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은 셈이었다.
흔히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에 전혀 애정이 없거나 먼저 분열한 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때 하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서 작년 5월 이후 진보는 분열한 적이 없다. 당권과 후보직을 노린 유사진보들이 당권 쿠데타에 실패한 나머지 자기들의 범죄행위가 노출될 것이 두려워 당을 박차고 나간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