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지상의 거처가 없는 노동자들, 누가 손을 맞잡을 것인가? 본문
지상의 거처가 없는 노동자들, 누가 손을 맞잡을 것인가?
- 거듭되는 철탑 고공농성 소식에 부쳐 -
지난 11월 17일부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두 분이 현대차 공장 앞 송전탑에 올라 한 달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법의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어 지난 14일 동두천시 대양운수의 버스노동자 두 분도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동두천시청 옥상철탑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20일) 또 세 번째 고공농성이 이어진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 전지부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부장 등도 어둠 가득한 새벽4시 평택 쌍용차 공장 앞 송전탑에 올랐다. 이들의 요구는 쌍용차 정리해고 국정감사와 해고자 복직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세상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법의 판결을 지켜달라고 하고 준법운행이 왜 해고의 사유인지 묻고 있으며, 회사는 복직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법과 상식, 약속의 이행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지상에 머무르고 호소할 곳조차 없는 현실이 참담하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과연 누가 대답해야 할 것인가. 대선을 앞둔 거리에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공약 현수막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들 정치집단에겐 미래에 대한 약속만이 있을 뿐, 지금 여기, 억압과 차별 속에 남루해진 노동현실이란 남의 일일 뿐이다. 노동문제를 다룬다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새누리당의 직무유기로 회의조차 열리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찾아 손을 잡고 해법을 말하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이 41일 단식 끝에 기어이 병원에 실려 가는 날, 그 고행을 이어받듯 동료 노동자가 또 송전탑에 올라야 하는 현실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는가. 한 가닥 세상의 관심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절박함으로 허공에 매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정부와 국회, 3명이나 되는 유력 대선후보,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재벌들은 아무런 번민도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고용불안과 양극화가 위태롭다 말만하지 말고 당신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절망에 누군가는 손 내밀고 화답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나라를 책임지고 경제를 주도하는 지도층인 양 한단 말인가. 이대로는 과거도 현실도 미래도 노동자에겐 암담할 뿐이다.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다. 그러기에 민주노총은 책임감과 죄송함을 떨칠 수가 없다. 이들 조합원들의 요구가 너무도 상식적이고 합당하기에 더욱 그러하며, 그 이행을 위해 자학에 가까운 투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우리의 무력감으로 투영되기에 더욱 아프다. 민주노총 정의헌 위원장 직무대행은 오늘 오전 쌍용차 고공농성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투쟁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미약하지만 강해질 것을 믿으며 절박한 만큼 끈질기게 지속될 것이다. 이제라도 자본과 정치는 양심과 실천을 보여주기 바란다. 회사는 이들 농성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 정부와 정치권은 부당한 노동현실을 중단시키기 위한 제도마련에 나서고, 먼 약속 이전에 지금 현실부터 바로잡는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세 번째 고공농성 소식이 들려 온 오늘, 문득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지상의 거처>가 떠오른다. 사람의 외로움과 절망을 노래했다는 그 시만큼이라도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따뜻한 시집 한 권, 저 ‘허공의 거처’에 보내고 싶다.
201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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