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이 말 한 마디 하려고 공무원 사표냈습니다 본문
저는 공무원입니다. 그동안 서울시교육청 감사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26일, 저는 사표와 함께 공무원증을 반납했습니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제가 보낸 지난 두어 달은 지옥같은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구처럼 벽장에 6억 원의 현찰을 보관하고 있다가 돈이 필요하다고 조카가 찾아오면 냉큼 건네줄 큰아버지를 둔 사람도 아닙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막상 공무원직 사표를 쓰려니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피할 수만 있다면 사표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올해 대학 1학년이 된 큰 아들 등록금도 떠올랐고 사춘기를 맞이한 중학교 2학년 딸아이의 걱정스러운 눈빛 역시 저를 주저하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고민과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지난 10월 말, 어느 날의 깨달음이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독배, 끝내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민의 시작은 지난 8월 1일이었습니다.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37년 만에 자신의 아픈 상처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의혹과 의문이 거듭되었던 자신의 의문사 논란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처절한 고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백하고도 분명한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끝내 지금까지 그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제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눈에 보이는 진실마저 외면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 2007년, 스스로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씨를 찾아가 과거 유신 독재자였던 자기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던 그였습니다. 그런 박근혜 후보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 돌변하여 장준하 선생의 존재를 부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닌 목격자의 말을 빌려 장준하 선생의 재조사 요구마저 거부한 것입니다. 더 이상 제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채워져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적, 정치적 '족쇄' 때문이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을 보면 '누구를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선거운동'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선거운동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무원인 자'입니다.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4호에 의하면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결국 선택한 것이 '두루뭉술한 어법'이었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여러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실족 추락사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의 '사실과 다른' 주장을 바로 잡고자 한 인터뷰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고백하자면' 비겁했습니다. '공무원 신분'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준하 선생의 사인 규명을 위한 국가 차원의 재조사를 거부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해 제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박근혜 후보가 왜 장준하 선생 사건의 재조사를 거부하는지 안타깝습니다"라는 식이었습니다. 또는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재조사를 거부한다면 이는 아버지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후보, 자신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말도 더러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런 부족한 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분들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양심마저 편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제 양심을 속이는 것은 옳은 일도, 당당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제가 가진 '작은 기득권' 하나를 내려 놓고 '지금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은 '자유'를 통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혹은 되고 싶다면 반드시 '반성해야 할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0월 말, 제가 사표를 결심한 그날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반성해야 합니다
결국 저는 스스로 공무원직을 내려 놓음으로써 더 이상 '강제적인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소중하고도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이처럼 작은 기득권 하나를 내려놓고 얻은 '정치적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 한 마디를 '67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에게 장준하 선생이 외쳤던' 말을 빌려 저 역시 외칩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에서는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대통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자격'이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매우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은 쉽게 말해서 민주주의 시계가 50년 이상 후퇴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는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이자 현재 새누리당 중앙 선대위 총괄본부장인 김무성 국회의원이 2년 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그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불가론'을 외치며 "박근혜 전 대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민주주의 비용을 지불할 생각이 없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강력 비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1961년 5월 16일,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그날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혁당 사건'과 '유신 독재' 그리고 '5·16 군사 쿠데타'를 대하는 그의 태도입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사과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과를 한다면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정수 장학회' 문제와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정수장학회는 불의한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의 아버지가 타인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은 권력 범죄 행위입니다. 만약 5·16 쿠데타가 없었다면 정수장학회는 결코 잉태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의 재산을 강탈한 아버지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그 잘못을 대신하여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피해자 유족들을 상대로 재차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인 재조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이 분명한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 나라의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왜 이처럼 행동하는지 잘 알 수 있는 극명한 사례가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을 둘러싼 논란입니다. 그는 지난 9월 새누리당 공동 대변인으로 임명되었으나 기자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의 파문으로 물러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날 기자들에게 욕설을 하게 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입니다.
김재원 의원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참석 기자들은 이 놀라운 말을 듣고 각자 자신들의 언론사 데스크 앞으로 발언을 보고했고 이에 논란이 벌어지자 김재원 의원이 급기야 기자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파문에 책임을 묻겠다며 물러나게 한 김재원 의원을 박근혜 후보는 불과 1달여 만에 복귀시켰습니다. 그것도 새누리당 대선기구인 '국민행복 추진위원회' 총괄 간사로 화려하게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김재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 모두 사실'임을 박근혜 후보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즉,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이자 유신 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2012년에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해자만 죄인이 아니라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역시 공범이고 가해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후보의 반성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진심으로 이같은 자신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 잡기를 촉구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반성 없이 그냥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은 37년 전, 스스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며 유신 독재자인 당신의 아버지와 맞서 싸운 장준하 선생을 위해서도 안 되며, 또한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도 안 됩니다.
잘못을 하고도 역사적인 단죄가 없고 또한 반성하지 않으면서도 영예를 누리며 살아가는 잘못된 우리 역사는 이제 청산되어야 합니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했고 또한 군사 쿠데타 세력이 청산되지 못한 이 그릇된 역사가 지금 끝장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단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선언합니다.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민주주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그 길 위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해야 합니다. 투표권이 있는 이들은 투표로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말을 하여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행동에 화답해야 합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민주주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박근혜 후보가 반성해야 할 것은 하나 더 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이제 그만 아버지를 놓아 드렸으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왜 사람들이 놓아드릴 수 없는지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단 말입니까.
그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서 오직 자신의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 독재자였던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고통 받았던 이들과 또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눈감고 귀 막았으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더없는 효녀일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비록 진실은 더디 움직이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온다는 상식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장준하 암살의혹규명 범국민 대책위원회'와 함께 전국의 주요 도시로 떠날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 재조사를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2012년 겨울에 정말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음을 스스로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저는 기억합니다. 지난해 12월, 이 시대의 '또 다른 장준하'로 기억되는 고 김근태 의장의 말씀입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이제 그 분이 남긴 '마지막 명령'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저는 박근혜 후보의 반성을 촉구하며 싸우겠다는 다짐을 선언합니다.
저는 소원합니다. 장준하 선생님을 비롯하여 판문점 김훈 중위 등 이 땅의 모든 군 의문사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남김없이 규명하는 정부가 수립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억울함을 당하고도 혼자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든든한 힘이 되는 '민주 정부' 수립을 기원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부터 노력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다가올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을 위해 함께 나갑시다. 정의가 승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기대합니다
누구처럼 벽장에 6억 원의 현찰을 보관하고 있다가 돈이 필요하다고 조카가 찾아오면 냉큼 건네줄 큰아버지를 둔 사람도 아닙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막상 공무원직 사표를 쓰려니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피할 수만 있다면 사표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올해 대학 1학년이 된 큰 아들 등록금도 떠올랐고 사춘기를 맞이한 중학교 2학년 딸아이의 걱정스러운 눈빛 역시 저를 주저하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고민과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표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지난 10월 말, 어느 날의 깨달음이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독배, 끝내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지난 8월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 |
ⓒ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
고민의 시작은 지난 8월 1일이었습니다.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37년 만에 자신의 아픈 상처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의혹과 의문이 거듭되었던 자신의 의문사 논란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처절한 고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명백하고도 분명한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끝내 지금까지 그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제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눈에 보이는 진실마저 외면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 2007년, 스스로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씨를 찾아가 과거 유신 독재자였던 자기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던 그였습니다. 그런 박근혜 후보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 돌변하여 장준하 선생의 존재를 부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닌 목격자의 말을 빌려 장준하 선생의 재조사 요구마저 거부한 것입니다. 더 이상 제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채워져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적, 정치적 '족쇄' 때문이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을 보면 '누구를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선거운동'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선거운동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무원인 자'입니다.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4호에 의하면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결국 선택한 것이 '두루뭉술한 어법'이었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여러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실족 추락사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의 '사실과 다른' 주장을 바로 잡고자 한 인터뷰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고백하자면' 비겁했습니다. '공무원 신분'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준하 선생의 사인 규명을 위한 국가 차원의 재조사를 거부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해 제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박근혜 후보가 왜 장준하 선생 사건의 재조사를 거부하는지 안타깝습니다"라는 식이었습니다. 또는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재조사를 거부한다면 이는 아버지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후보, 자신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말도 더러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런 부족한 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분들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양심마저 편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제 양심을 속이는 것은 옳은 일도, 당당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제가 가진 '작은 기득권' 하나를 내려 놓고 '지금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은 '자유'를 통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혹은 되고 싶다면 반드시 '반성해야 할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0월 말, 제가 사표를 결심한 그날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반성해야 합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나 10월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프롬프터에 박 후보가 발표할 원고 내용이 표시되고 있다. | |
ⓒ 권우성 |
결국 저는 스스로 공무원직을 내려 놓음으로써 더 이상 '강제적인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소중하고도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이처럼 작은 기득권 하나를 내려놓고 얻은 '정치적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 한 마디를 '67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에게 장준하 선생이 외쳤던' 말을 빌려 저 역시 외칩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에서는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대통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자격'이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매우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은 쉽게 말해서 민주주의 시계가 50년 이상 후퇴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는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이자 현재 새누리당 중앙 선대위 총괄본부장인 김무성 국회의원이 2년 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그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불가론'을 외치며 "박근혜 전 대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민주주의 비용을 지불할 생각이 없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강력 비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1961년 5월 16일,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그날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혁당 사건'과 '유신 독재' 그리고 '5·16 군사 쿠데타'를 대하는 그의 태도입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사과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과를 한다면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정수 장학회' 문제와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정수장학회는 불의한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의 아버지가 타인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은 권력 범죄 행위입니다. 만약 5·16 쿠데타가 없었다면 정수장학회는 결코 잉태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의 재산을 강탈한 아버지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그 잘못을 대신하여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피해자 유족들을 상대로 재차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인 재조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이 분명한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 나라의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왜 이처럼 행동하는지 잘 알 수 있는 극명한 사례가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을 둘러싼 논란입니다. 그는 지난 9월 새누리당 공동 대변인으로 임명되었으나 기자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의 파문으로 물러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날 기자들에게 욕설을 하게 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입니다.
김재원 의원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참석 기자들은 이 놀라운 말을 듣고 각자 자신들의 언론사 데스크 앞으로 발언을 보고했고 이에 논란이 벌어지자 김재원 의원이 급기야 기자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파문에 책임을 묻겠다며 물러나게 한 김재원 의원을 박근혜 후보는 불과 1달여 만에 복귀시켰습니다. 그것도 새누리당 대선기구인 '국민행복 추진위원회' 총괄 간사로 화려하게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김재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 모두 사실'임을 박근혜 후보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즉,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이자 유신 독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2012년에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해자만 죄인이 아니라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역시 공범이고 가해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후보의 반성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진심으로 이같은 자신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 잡기를 촉구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반성 없이 그냥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은 37년 전, 스스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며 유신 독재자인 당신의 아버지와 맞서 싸운 장준하 선생을 위해서도 안 되며, 또한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도 안 됩니다.
잘못을 하고도 역사적인 단죄가 없고 또한 반성하지 않으면서도 영예를 누리며 살아가는 잘못된 우리 역사는 이제 청산되어야 합니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했고 또한 군사 쿠데타 세력이 청산되지 못한 이 그릇된 역사가 지금 끝장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단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선언합니다.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민주주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그 길 위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해야 합니다. 투표권이 있는 이들은 투표로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말을 하여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행동에 화답해야 합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민주주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3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 |
ⓒ 권우성 |
박근혜 후보가 반성해야 할 것은 하나 더 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이제 그만 아버지를 놓아 드렸으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왜 사람들이 놓아드릴 수 없는지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단 말입니까.
그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서 오직 자신의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 독재자였던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고통 받았던 이들과 또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눈감고 귀 막았으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더없는 효녀일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비록 진실은 더디 움직이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온다는 상식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장준하 암살의혹규명 범국민 대책위원회'와 함께 전국의 주요 도시로 떠날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 재조사를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2012년 겨울에 정말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음을 스스로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저는 기억합니다. 지난해 12월, 이 시대의 '또 다른 장준하'로 기억되는 고 김근태 의장의 말씀입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이제 그 분이 남긴 '마지막 명령'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저는 박근혜 후보의 반성을 촉구하며 싸우겠다는 다짐을 선언합니다.
저는 소원합니다. 장준하 선생님을 비롯하여 판문점 김훈 중위 등 이 땅의 모든 군 의문사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남김없이 규명하는 정부가 수립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억울함을 당하고도 혼자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든든한 힘이 되는 '민주 정부' 수립을 기원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부터 노력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다가올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을 위해 함께 나갑시다. 정의가 승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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