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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감청 영장’ 들고 민간인 사찰했나

카알바람 2013. 1. 15. 14:03

 

국정원, ‘감청 영장’ 들고 민간인 사찰했나

이상규 의원 측, “국정원 ‘영장’은 통신제한조치 허가서” 밝혀

정혜규 기자

입력 2013-01-15 05:32:46 l 수정 2013-01-15 09:48:37

 

이상호 '국정원 직권남용 수사하라'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수원 중부경찰서 앞에서 경기진보연대가 '국정원 민간인 사찰 직권 남용 철저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사찰피해자인 이상호 수원시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진보단체 간부를 미행하다 직원이 붙잡히자 국정원은 협조자료를 통해 “영장을 발부받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현장에서 공무 수행 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이 법원으로부터 ‘통신제한조치허가서’라는 ‘감청 영장’을 발부받고 이를 근거로 미행과 사진 촬영 등 무차별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국정원 미행 피해자인 이상호씨 측은 13일 수원 중부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이 ‘통신제한조치허가서’를 발부받은 뒤 이상호씨를 무차별 미행하고 사진 촬영했다”고 폭로했다. 이상호씨의 변호인단인 박치현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 변호사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확인 바로는 국정원이 이상호씨에 대해 통신제한조치허가서를 발부받았다”고 말했다.

이상규 의원 측도 “복수의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국정원이 발부받았다는 ‘영장’은 통신제한조치허가서가 맞다”고 확인했다.

통신제한조치허가서는 통상의 영장이 아닌 ‘통신제한조치’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근거한 일종의 ‘실시간 감청허가서’또는 ‘사전 감청영장’이라 할 수 있다. 통비법 3조에는 통신제한조치를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가안보나 마약·총포 관련 범죄 등에 대해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감청할 수 있도록 했다.

통신제한조치허가서의 대상은 우편과 모든 종류의 유무선 통신을 포함한다. 즉 우편, 유무선 전화와 이메일, 팩스 등을 실시간으로 검열 및 감청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에 침해 위험이 대단히 높다. 이 때문에 이 허가서는 관할 고등법원의 수석부장판사가 하며, 기간은 2개월을 넘지 못하되 2개월 안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경찰을 비롯해 수사기관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통신기록조회는 통신한 내역만 확인된다는 점에서 통신제한조치허가서와 다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유괴 등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감청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주로 공안수사를 하는 국정원 등에서 자주 활용한다.

광범위한 미행과 사진 촬영, 정당화할 수 있나

이상호씨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통신제한조치허가서를 발부받았다고 해도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미행과 사진 촬영이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호씨는 최소한 지난 3일 이후부터 미행이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또 미행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두 대의 차량이 번갈아 따라오기도 했고, 교통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미행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두 차례나 수영장에서 자신을 촬영하는 신원 미상의 남성을 확인하고 쫓아갔으나 현장에서 사라졌다고 밝혔다.

국정원 민간인 사찰 '세금이 아깝다'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수원 중부경찰서 앞에서 경기진보연대가 '국정원 민간인 사찰 직권 남용 철저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사찰피해자인 이상호 수원시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이 생각에 잠겨있다.

 

이상호씨 측은 국정원이 미행과 사진 촬영 등 민간인 사찰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박치현 변호사는 “영장을 발부 받았다고 모든 사찰이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행이 합법화되는 영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신제한조치허가서가 남용될 위험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회 설창일 변호사는 “통신제한조치는 통화 내용을 실시간 감청하기 때문에 사인 간의 관계를 옆에서 듣고 있다는 점에서 인권침해성이 크고, 근본적으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도청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 “허가서가 있더라도 미행이나 사진 촬영은 등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로 과잉수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을 한 것이 국정원 직원이 맞는지, 미행과 사진 촬영을 합법적 수사로 볼 수 있는지를 경찰이 수사해야 하지만, 정상적인 수사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수원중부서 관계자는 통신제한조치허가서 발부에 대해 “사실이든 아니든 확인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국정원의 미행에 대해 이상호씨 측이 직권남용 등으로 고소한 것과 관련, “수사 계속할지 종결할 것인지 정해진 것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