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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 밤 11시 중간브리핑, 경찰의 무모한 도박
(서프라이즈 / 부천사람사는세상 / 2012-12-17)
박근혜가 왜 그토록 양자토론을 피했는지 확인하는 데 10분이면 충분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자막으로 내보낸 MBN 자막을 보면 문재인 압승이었다. 대부분은 ‘어떻게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인가?’ 서로에게 반문했다. 물론 일부는 ‘말하기 대회는 아니잖아요’라는 의견을 보내기도 했으나 박근혜는 말도 못했고, 자신의 생각도 드러내놓지 못했다. 사상 처음 진행된 양자TV토론은 그렇게 끝이 났다.
토론이 끝난 이후 <문재인TV>에 등장한 유시민은 승리를 확신했는지 13일 이후 여론조사에 대해 ‘(수치를 밝힐 순 없으나) 근소하게 문재인이 역전했다’고 공개했다. 추세도 문재인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 만큼, 문재인이 압승할 수 있도록 지지율이 투표로 이어지기를 당부했다. 야권측 평론가들이 ‘축배는 19일 선거 끝나고 하자’며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속보’가 떴다. 선거 막판,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표심에 영향을 미칠만한 이슈가 예상치 않게 터져 나온 것이다.
TV토론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 야권에서 이를 Review하면서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려던 밤 11시 <수서경찰서>에서 중간브리핑 자료를 언론에 송부했다. 밤 11시에 송부하는 중간브리핑 자료, 문재인 관련해 악성 댓글을 단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소위 ‘국정원녀’의 데스크탑과 노트북을 확인한 결과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2월 17일(월) 오전 9시에 공식 브리핑을 하겠다고 수서경찰서는 덧붙였다.
박근혜 그토록 ‘국정원女’ 운운했던 까닭
3차 토론회에서 박근혜와 문재인은 2가지 이슈에서 크게 논쟁(그것을 논쟁이라 할 수 있다면)을 벌였다. 하나는 전교조 관련된 건이었고, 또 하나는 소위 ‘국정원女’의 인권 관련 내용이 그것이었다. 국정원녀 관련해 박근혜는 문재인에게 인권변호사인데 28세 여성을 40여시간 감금하고 인권을 침해했는데 사과할 의향은 없는지를 물었다. 문재인은 이에 대해 강하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잠금과 감금조차 구분하지 못한 대목을 지적했지만 박근혜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녀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성폭행범 같이 차로 사고를 내고 또 40시간이나 감금했다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동어반복한 것이다. 문재인의 해박한 법률지식이 발휘되었고 박근혜가 일방적으로 밀린 것으로 종료되었다.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수사기관(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난 1시간 후에 수서경찰서가 중간브리핑을 내놓았다. 밤 11시에…
밤 11시라는 발표시간이 참 흥미롭다. 서울과 수도권에 보급하는 조중동은 밤 11시 이후에 최종본을 찍는다. 17일(월) 조중동 1면에는 TV토론 내용이 보도될까? 물론 스스로 언론이라 믿기 때문에 당연히 TV토론 내용이 보도될 것이다. 주요 쟁점이었던 ‘국정원녀’ 관련해 박근혜, 문재인의 의견을 달 것이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 <경찰, 국정원녀 댓글 단 흔적 발견 못해>라는 제목을, 그래서 실제로는 박근혜에게 도움이 되는 편집의 미학을 발휘하지 않을까.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초박빙이다. 선거 초반만 해도 10% 정도 앞서가던 박근혜가 D-3일 앞두고 동률로 접어들었다. 10곳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이제 문재인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비율이 3~4곳이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올라간다면 문재인이 앞서는 조사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의 리드에 가장 커다랗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바로 서울, 경기 즉 수도권이다. 단적으로 15일 문재인, 박근혜는 각각 서울에서 유세를 벌였다. TV토론으로 문재인-박근혜가 유세에 나서지 못했던 16일은 안철수가 서울, 경기에서 유세를 벌였다. 선거를 이틀 남겨둔 17일에도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는 모두 서울과 경기에서 유세를 벌인다. 지금 어느 지역이 중요한지 후보들의 동선이 웅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수서경찰서의 밤 11시 서면브리핑은 17일 수도권에 배달되는 조중동 지면에 착실하게 반영될 것이다.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이를 반박하거나, 비판하는 민주당의 의견은 미처 반영하지 못할 것이다. 밤 11시이기 때문이다. 중립을 가장한 친박 교수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간발표의 사실성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라면서 중립을 가장한 편들기에 나섰다. 그렇다면 과연 경찰의 발표는 사실에 어느 정도 부합했나?
국정원녀 사건, 조사는 완벽히 이루어졌는가?
국정원녀 사건은 여러 가지로 미심쩍다. 그곳에서 2년 전부터 거주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2번 지냈지만 의류와 살림살이가 거의 없다. 식사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도대체 옷은? 민주당에서는 거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경찰에 IP를 알려주고 수사에 협조만 했더라면 1시간이면 모두 종료되고 이렇게까지 이슈화되지 않았을 건이 이렇게까지 흘러오게 된 배경도 의심스럽다.
수서경찰서의 중간브리핑을 보노라면 의문은 좀 더 커진다. 이들이 조사한 기기는 국정원녀의 데스크탑과 노트북이었다. 두 개만 조사하면 다 한 것인가? 아니다. 민주당에서는 처음부터 테스크탑, 노트북, 그리고 USB와 스마트폰까지 조사해줄 것으로 요청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국정원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이 ‘스마트폰’이었다. 국정원은 민주당에 스마트폰도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데스크탑과 노트북만 조사하고는 ‘혐의없음’이라고 공개했다. 스마트폰은? USB는?
경찰은 중간 브리핑 이후에도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더더욱 굳이 밤 11시에 서면 브리핑을 할 이유가 있었을까?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고 모든 의심 물품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혐의없음’이라고 공표한 것이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문제는 커진다.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수서경찰서장? 경찰청장?
야당에서조차 의심했던 경찰청장의 위험한 도박?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이후 김기용 경찰청장이 임명됐다. 임명된 것을 두고 말들이 나왔다. 먼저, 승진이 너무 빨라 갑작스러웠다.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지 4달만에 치안총감으로 승진했다. 대선을 책임져야 할 자리임을 염두에 둔 것이란, 그래서 박근혜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이명박은 서울경찰청장인 이강덕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와의 관계를 의식한 때문인지 민주당의 시각은 곱지 않았다. 언론에 소개된 한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 유권자들을 의식해 무리하게 밀어붙였을 가능성도 있다. 김 청장이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하지 않고 박근혜 위원장에게 줄을 대려 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시기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밤 11시 공개를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서경찰서장이 결정했다고 보면 순진할 것이다. 경찰청장은 보고를 받았나? 이 대목은 민주당에서 반드시 책임을 추궁해야 할 대목이다. 만일 경찰청장이 중간 브리핑 발표를 승인 혹은 지시했다면 그에 합당한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본질적인 질문, 경찰은 왜 야당에서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USB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고 “혐의없음”이라고 공개해 야당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자초하고있는가. 왜 경찰은 사상 초유의 초박빙 대선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든 모양새를 굳이 자초했을까? 새누리당에서 반색하고, 민주당에서 격앙돼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왜 경찰은 대선 이후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굳이 중간결과라는 ‘작두’에 스스로 올랐나.
선거 막판, 국정원을 대신해서 스스로 작두를 타고 있는 경찰에 대해 민주당의 대응이 궁금하다. 불같이 기세를 올리던, 그래서 투표하자마자 결과를 확신하고 안철수는 미국으로 출국하려 했을 정도인 상황에서 이 이슈는 대응하기에 따라서 야권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응 시간이 부족하다는 대목, 즉 선거 이후에 조사결과를 발표할 줄 알았는데 밤 11시에 전격적으로 발표할 줄 몰랐다는 의외성에 민주당도 놀랐을 것이고 그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이는 분명 악재일 것이다.
선대본부장 김부겸은 국정원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측에서 명쾌하게 해명하지 않을 때에는 추가 대응을 하겠다. 민주당이 선거 일주일을 남기고 이 정도로 일을 제기했을 때는 이른바 소문만 가지고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 그 여직원은 우리가 사용하는 고정IP를 쓰지 않았다. 무선IP를 쓰고 있었다”
17일 민주당의 대반격이 무엇일지에 따라서 국정원 사건은 미풍일지, 약풍일지, 중풍일지가 결정될 것이다. 선거가 초 막판이기 때문에 강풍으로까진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도 역전의 노장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유시민의 말처럼 대세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인지, 오히려 박근혜에게 역풍이 불어 젊은 유권자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불러 들일지 지켜볼 일이다.
투표는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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