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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4년째 싸움 중… 고개 떨군 금양호 유가족들

카알바람 2013. 3. 28. 14:42

국가와 4년째 싸움 중… 고개 떨군 금양호 유가족들

정부 지원 없는 3주기 추모제… “천안함과 차별대우” 울분 토하기도

정혜규 기자 jhk@vop.co.kr
입력 2013-03-27 19:58:08l수정 2013-03-28 00:48:14
금양호 선원 유가족이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국가를 상대로 4년째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금양호 선원 유가족이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국가를 상대로 4년째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민중의소리



 
이원상(46) 금양호유가족대책위원장의 시계는 형인 이용상 선원이 실종된 2010년 4월 2일에 여전히 멈추어 있다. 지난 26일 진행된 ‘천안함 46용사 3주기 추모식’을 보면서도 고개를 떨궜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나서다 죽은 금양호 선원과 유가족들은 왜 저 자리에 끼지 못하느냐”는 울분 때문이었다.

금양호 선원 유가족들이 4년째 국가와 싸우고 있다. 국가로부터 의사자 지정을 요구하며 외로운 투쟁을 벌였던 유가족들은 현재 국가에 보상금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이고 있다.

“국가를 위해 나서다 죽었는데”… 서러운 금양호 유가족들

저인망 쌍끌이 어선 금양호는 2010년 4월 2일, 해군의 요청에 따라 천안함 실종자와 잔해물 등을 수색하다 돌아가는 길에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당시 선원 9명 가운데 2명만 시신이 발견됐고, 나머지는 모두 실종됐다.

이 위원장을 포함한 유가족들은 이후 고인의 명예를 찾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유가족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만큼 이들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침몰 당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구조행위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천안함 수색 중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으로 돌아가다 사망했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이후 유가족들은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또 국회 의원실마다 방문해 “금양호 선원들을 의사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의사자 지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유가족들은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의사자 지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민중의소리 김철수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숨진 금양호 선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조성되면서 길은 열렸다. 국회가 금양호 선원들이 의사자 인정이 될 수 있도록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 개정안에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요청해 수색에 나섰을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이동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의사자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정부가 의사상자법 시행령을 개정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을 ‘직접 구조현장으로 이동하거나 구조행위 후 주거지나 생업지 또는 구조요청을 받은 당시의 장소로 이동한 경우’로 규정하면서 지난해 3월 의사자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죽은 선원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겁니다”

그러나 의사자로 인정했다고 해서 아픔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 7~9월 천안함 국민성금에서 이미 충분한 보상금이 지급됐다는 이유로 더이상의 추가 보상을 하지 않았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이미 보상금을 지급받은 경우 그 금액에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게 돼 있는데, 정부가 이 조항을 따른 것이다.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에 들어갔다. 1라운드가 의사자 인정을 요구하는 싸움이라면, 2라운드는 의사자에 맞는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위원장은 “성금은 국민이 준 것이지 국가가 준 것이 아니었다”며 “국가를 위해 일하다 죽은만큼 정당하게 보상을 해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은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으면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했다”며 “단지 돈을 몇푼 더 받기 위한 문제가 아니다. 죽은 선원들의 명예를 살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금양호 유가족들은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상태다. 재판부가 “금양호 희생자 유족들은 이미 의사자에 준하는 예우와 보상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정부의 해석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금양호 유가족들은 곧바로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숨진 정봉조 선원의 매형인 이창재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명예다. 끝까지 해봐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밝혔다.

지난 2010년, 금양호 유가족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손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금양호 유가족들이 장례식장을 방문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손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정부 외면 속에 조촐하게 진행할 3주기 추모제

다음 달 2일은 금양호 선원들이 숨진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금양호 유가족들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다. 이들은 금양호 위령탑이 세워진 인천시 중구 항동 역무선부두에서 유가족만의 조촐한 추모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천안함 추모식을 보면서 속이 많이 쓰렸다”며 “금양호 선원들도 나라를 위해 죽었는데, 정부가 여전히 금양호를 차별대우하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이 정부 조직이나 공무원들이 많이 바뀌어 이제 연락할 정부 관계자들조차 없다. 이렇게 잊혀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 상황을 알고 있는 공무원은 이제 연락조차 받지 않는다”며 “숨진 선원들의 경우 대부분 직계가족이 없어 의사자 혜택도 제대로 못받고 있다. 혜택을 떠나 죽은 선원들의 명예만이라도 찾고 싶은데… ”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금양호 유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정부는 더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금양호 선원들은 국가유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금양호 유가족들이 관련 법이 없어 보상을 못받고 있을 때, 정부가 개입해 천안함 성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위령탑 등 추모공간을 마련해줬고 1주기 추모식 때는 지원도 하는 등 우리도 노력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