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36:8 본문

가끔 쓰는 일기

36:8

카알바람 2012. 10. 30. 15:15

엊그제 작은 아들이 학교 갔다 오자마자 "아빠, 형아 오면 돈 만원만 주세요, 형아 반장이래요. 기념으로 만원만 주세요" 라고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그게 뭔소리냐고 묻자 "형아가 2학년 1반 반장이 됐다고요"라고 재차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서 "형아 오면 반장된 기념으로 맜있는거 사먹게 형아에게 만원만 주세요"라는 소리도 빼먹지 않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기뻐해야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는 12년하고 몇개월의 학교생활과 6년의 공장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되보지못한 반장을 8년만에 됐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반장은 돈 쓰는 자리라는 소리도 들리고 반장 부모는 학교의 봉이라는 소리도 있기에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부모는 학교에 년간 천만원이 넘는 돈을 갖다 바쳤다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세상을 바꾸겠다고, 썩어빠진 세상의 부조리를 말끔하게 청소하겠다고 투쟁하는 아빠 아닙니까!
그래서 아들놈 학교에서 만약 반장 부모에게 반장 부모라는 명목으로 단돈 10원이라도 요구한다면 당장 학교 쳐들어가서 뒤집어 엎어버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들놈에게 미안하겠지만 그래도 반장은 반장으로써의 역할만 하면 된다는게 제 소신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초등학교에서 결코 돈 들어갈일이 없습니다.
점심값 따로 내고, 소풍비 따로내고, 준비물 각자 준비하는데 돈 들어갈일이 없습니다.
엄마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하고(사실 이것도 필요없는 일인데), 급식 당번 정해서 급식하고(이것도 마찬가지),방과후 수업비 따로내는데 그래도 학교에 수백에서 수천만원씩 돈 갖다주는 미친 부모들이 있지만 저는 결코 아들놈이 부끄럽지않게 당당하게 정면돌파해볼 생각입니다.
좀 있으면 스승의 날이 다가옵니다.
제 기억으로는 집사람 언니(저에게는 처형입니다.)가 큰 딸 초등학교 3학년때 스승의 날 선물로 여선생님에게 지갑을 선물했는데 아이가 그냥 가져왔더랍니다. 그래서 빈 지갑안에 십만원권 수표 한장을 넣어서 다시 아이에게 보냈더니 선생님이 보내준 선물 고맙게 잘 받았다고 전화가 왔더랍니다.
근 10년전의 일이기도 하고, 극히 일부의 행위이기는 하지만 저는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받는 선생님도 나쁘지만 갖다주는 부모들이 더 나쁘다고 봅니다.
내자식만 잘봐달라고, 남의 아이들이야 어떤 대우를 받던 내 자식만 관심있게 지켜봐달라는 몰지각한 행동은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야기가 다른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어쨌던 아들놈이 아버지는 36동안 한번도 못해본 반장을 맡았습니다.
작은아들놈 이야기대로 만원을 주지는 않고 대신 과자를 사주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지금 당장은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생각한대로 그런 안 좋은 일들만 닥쳐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만 있을 뿐입니다.
신성한 교육의 현장이 돈으로 물들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내 자식만 챙기고 내자식만 소중하다는 개인주의를 버리길 바랄뿐입니다.
재벌의 아이든, 빈민의 아이든, 소년 소녀가장이든 누구나 차별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아이들이 웃으며 무럭무럭 자라날수있는 학교가 되길 바랄뿐입니다.

'가끔 쓰는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하루...  (0) 2012.10.30
깜빡한 장남 생일  (0) 2012.10.30
주워온 자전거!  (0) 2012.10.30
우리 가족은 투쟁중!  (0) 2012.10.30
행복과 힘겨움의 차이  (0) 201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