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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많이 먹어서 학교비정규직 해고?

카알바람 2013. 2. 7. 12:55

음식 많이 먹어서 학교비정규직 해고?

악명높은 ‘상대평가’ 진상 드러나

김대현 기자 kdh@vop.co.kr
입력 2013-01-30 14:56:12l수정 2013-02-07 10:24:15
 
김순자(조리원, 가명):영양사님. 제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는데, 어떤 점에서 태도가 좋지 않나요? 어떤 태도인지 알아야 다른 데 가서 그렇게 안 하죠. 막상 (해고가) 닥치니 자세하게 물어보게 되네요 영양사님
정민혜(영양사, 가명)씨:지각도 많이 하고...

김순자:아침에 회의할 때 몇 번 늦었지만 작업에 영향을 준 건 아니잖아요. 아무튼 지각한 건 맞으니까 그건 수용할께요. 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정민혜:음식하면서도 많이 드시죠?

김순자:저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영양사님. 그건 인정 못하겠어요.
정민혜:제가 먹는 것 봤어요.

김순자:음식하면서 간 볼려고 몇 번 먹은 건데 몇 번 영양사님이 지나갈 때 봤다고 제가 항상 그런 것처럼 생각하시면 어떡해요. 그리고 누구 걸고 넘어가긴 싫지만 음식하면서 안 먹는 사람 없잖아요. 지각한 건 인정해도 이건 인정 못하겠네요
정민혜:그래도 인정해야죠

김순자: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영양사님
정민혜:어떤 요리를 하면 그것에 대해서 이게 더 낫다 저게 더 낫다

김순자:그건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제가 그렇다고 영양사님 말 무시하고 음식하지 않은 것도 아니잖아
정민혜:그럼 다 수긍하고 ‘알았어요’라고 했나요?

김순자:제가 그럼 영양사님 말씀 어기고 음식 다르게 한 것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한 적은 있어도 메뉴 정해지면 군말 없이 했잖아요
정민혜:지금 말할 때도 굉장히 기분 나쁘게 말해요

김순자:제가 기분 나쁘죠. 제가 임의대로 한 것이 없는데 영양사님 개인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것 아니에요
정민혜:제가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데 이의를 제기하니깐...

김순자:이의를 제기해도 제가 임의대로 한 것 아니잖아요. 지금 영양사님 말은 제가 ‘예’라고 안했다는 소리로 밖에 안들려요

경북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위 사진은 본 기사와 상관 없습니다)

경북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위 사진은 본 기사와 상관 없습니다)ⓒ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지난 2000년부터 10년 넘게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김씨는 최근 해고통보를 받았다.

전국의 각 교육청마다 학생정원수에 비례해 조리원 수를 정해놨는데, 김씨가 일하고 있는 학교 측은 올해 학교 정원이 줄 것으로 예상하고 해고를 결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경북교육청의 경우, 아래와 같이 ‘급식실 조리원 배치기준표’를 규정해 시행하고 있다. 결국 학생 정원이 줄어든 이상, 김씨가 근무하는 급식실에선 무조건 한 명이 해고돼야 하는 셈이다.

조리종사원(조리사 포함) 배치기준(경북)

조리종사원(조리사 포함) 배치기준(경북)ⓒ경북교육청



그런데 이번에 김씨가 해고자로 결정된 데에는, 학교와 영양사 측의 평가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평가도 한 몫 했다. 학교 측에서 사실상 동료들끼리 해고자를 정하게 하는 이른바 '상대평가'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십수년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해고자’로 지목당한 셈이다.

이같은 해고자로 지목당한 당사자는 심한 배신감에 충격을 받게 되고, 타 학교로 옮기더라도 ‘문제 인물’로 찍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인원을 늘려야 하는 학교에서도 전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보다는 신규 인원을 채용하려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또한 녹취록에 나타났듯 전씨가 밝힌 김씨의 해고 사유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영양사 정씨로 부터 전화통화로 해고통보를 받고 억울함을 느낀 김씨는 정씨에게 다시 전화를 해 자신의 해고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고, 이에 전씨는 지각, ‘근무 중 음식먹기’, ‘이의제기’ 등을 문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같은 이유로 김씨에게 낮은 평가점수를 책정했고, 이는 상대평가 점수와 합산돼 김씨가 해고자로 지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씨의 주장처럼 ‘근무 중 음식을 많이 먹었다’, ‘음식메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는 주관이 섞여 있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문제로 삼은 김씨의 언행이 정당한 경고나 징계 절차가 아닌 해고라는 극단적인 징계로 이어졌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김씨는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에 상처가 돼서 다른 곳에 말할 수도 없다”며 “어차피 한 명은 해고를 해야하는데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상대평가라는 것을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이 왕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는 봤지만 제가 왕따가 된 것 같다”며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살기 위해 복직을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물론 영양사들도 고충이 많다. 규정상 해고를 해야 하는데 조리원들이 일하는 급식실의 책임자는 정규직인 영양사다 보니 ‘악역’을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양사가 방학 중 학교로 해고 대상자를 불러 해고통지서를 던지듯 떠안기고 돌아서 가버린 사례도 이런 어려움을 보여준다.

애초 김씨는 “녹취록 공개 여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소문이 빠른 지역사회에서 김씨에 대해 안좋은 소문이 퍼지면, 다른 학교로 이직을 한다 하더라도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취록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상대평가라는 비인간적인 제도로 해고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고,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개했다”고 밝혔다.